북 "한반도 비핵화는 이미 물 건너 갔다"…"제2의 6.25 일어날 수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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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6일 "추가 핵실험 여부는 미국의 태도에 달려 있다"고 밝혔다. "미국이 (한미)군사동맹 강화를 계속하면 2차 한국전쟁 발발로 이어질 것"이라고도 했다. 핵을 손에 들고 한국과 미국을 위협하는 모양새다.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외교장관회의 배석을 위해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를 찾은 이동일 전 북한 유엔대표부 차석대사는 기자회견을 자청, 추가 핵실험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미국은 북한 눈 앞에서 (군사훈련을 통해)광적으로 도발의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며 이처럼 말했다. "미국의 부정적인 대북정책으로 인해 한반도 비핵화는 이미 물 건너갔다(gone already)"고도 주장했다.

특히 이 전 대사는 10월 노동당 창건 70주년 기념일(10월 10일)을 전후해 장거리 로켓 발사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 "우주개발은 북한의 국가 정책이고, 주권 사항"이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북한은 연구 목적의 위성을 계속해서 우주로 쏘아 올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장거리 미사일 발사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겠다는 뜻이라고 정부 당국자는 해석했다.

이 전 대사는 외무성 국제기구국 부국장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날 기자회견은 북한 대표단을 이끌고 온 이수용 외무상의 대변인 자격으로 진행했다. 북한은 낮 12시쯤 ARF 주최측을 통해 기자들에게 기자회견 소식을 공지했다. 기자회견은 회의 장소인 푸트라월드트레이드센터(PWTC) 미디어센터에서 오후 4시부터 30분동안 통역없이 영어로 진행됐으며, 이 전 대사는 입장 발표 뒤 9개의 질문에 답했다.

이에 앞서 이수용 외무상은 ARF 외교장관회의 세션에서 첫번째로 발언 기회를 얻어 "미국이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의 지위 회복을 위해 대규모 군사력을 동원하고 군사동맹을 강화하는 구실로 북한을 이용하는 정책을 계속한다면 이는 필연적으로 2차 한국전쟁 발발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또 "미국의 선택이 무엇이든, 우리는 어떤 종류의 전쟁에도 맞설 능력이 있다"며 "이제 미국이 정신을 차리고 과감하게 정책 전환을 할 때"라고 했다. "미국이 진정 바라는 것은 한반도의 비핵화가 아니라 한반도의 미국화"라고도 했다. 유엔 북한인권조사위(COI) 보고서는 조작된 것이라는 기존의 주장도 되풀이했다.

이 외무상은 전날 러시아, 파키스탄, 미얀마 외교장관과 만난 데 이어 이날 일본, 인도네시아 등과도 양자회담을 하는 등 활발한 행보를 보였다. 그는 양자회담을 통해 북한의 핵 보유가 정당하다는 입장을 피력했다고 한다. 이와 관련, ARF에 참석중인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기자들과 만나 "회의 기간 내내 많은 나라들이 북한의 핵개발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하며 북한이 유엔 안보리 결의와 9·19공동성명상 의무를 준수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며 "북한이 회의에 참석하는 동안 이런 국제 여론을 잘 들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회의가 끝나고 나올 ARF 의장성명에 한반도 문제가 포함될텐데, 북핵 문제에 있어서 이전보다 좀 더 단호한 내용을 담은 초안이 회람됐다. 북한 인권 문제에 있어서는 국가들 간에 서로 의견이 엇갈려 막판까지 포함시킬지를 놓고 의견을 조율하고 있다"고 전했다.

쿠알라룸푸르=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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