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수로 세계 명화 재현하는 이용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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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우먼 인 골드'의 소재가 된 구스타프 클림트의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의 초상'이 미술관에 걸려 있다. 일명 '오스트리아의 모나리자'다. 언뜻 그림처럼 보였지만 다가가니 한 땀 한 땀 비단으로 수를 놓은 작품이다. 튀어나올 것 같은 생동감에 전율이 느껴진다. '혼(魂)자수 미술관' 이용주(58) 작가는 "원작과 같은 크기 같은 색채의 작품"이라며 "오스트리아 사람들이 미국으로 건너가 아쉬워하는 이 작품을 보면 느낌이 남다를 것"이라고 말했다. 옆에는 고갱이 만년에 그린 '언제 결혼하니'라는 가로 1m가 넘는 작품이 걸려 있다. 2층은 고흐의 작품 50여 점이 자수로 전시 중이다. 입체감에다 방향에 따라 색감이 달라지는 홀로그램 효과가 있는 게 특징이다. 미술관은 경주시 노동동 신라 왕릉 봉황대 옆에 자리 잡고 있다.

이 작가는 이렇게 자신이 창안한 혼자수 기법으로 10년 전부터 세계의 명화를 재현하고 있다. 대상도 정했다. 동서양의 명화 394점이다. 우리나라 초·중·고 미술 교과서 18권을 분석했다. 그곳에 등장하는 명화들 가운데 작가 사후 70년이 지나 저작권이 소멸된 작품이다. 조사해 보니 이들 명화는 현재 24개 국 168개 미술관에 소장돼 있었다.

이 작가가 명화에 도전한 것은 원작의 유한성 때문이다. 종이 등에 그려진 그림은 보존 기술이 뛰어나도 수백 년이 지나면 훼손될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순천 선암사의 고려 삼족오 자수는 1000년 가까이 됐다. 중국에는 2000년 된 자수도 남아 있다. 그는 "실크에다 습기와 좀·곰팡이에 강하고 내열·내한성이 뛰어난 옻칠이 더해지면 3000년은 간다"고 주장한다. 거기다 명화를 다른 소재와 기법으로 재현하는 것 자체가 창작이라는 것이다. 전주 경기전의 조선 태조 어진은 1872년 원작을 모사했지만 국보 317호로 지정돼 있다.

그는 또 원작과 같은 크기를 고집한다. 가로 5m가 넘는 헬스트의 '뮌스터조약'(232x547㎝)도 그 크기 그대로 수를 놓았다. 6명이 11개월간 작업했다. 명화를 같은 크기로 만들어야 공간과 색을 이해할 수 있고 언젠가 원작이 사라지면 자수 원작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자수의 바느질을 그가 다하는 건 아니다. 이 작가가 밑그림을 그리고 색을 맞춘 비단실을 준비하면 제자 20여 명이 달라붙는다. 화룡점정은 그의 몫이다. 19년째 혼이 깃든 극세 작업에 매달리다 보니 작가는 치아가 송곳니만 남았다. 그는 한국에 자수 세계 명화 미술관을 만드는 게 꿈이다. 현재까지 150여 점 작업을 마쳤다.

소나무와 인물화도 주제다. 인물화의 주인공은 프란치스코 교황, 압둘라 2세 요르단 국왕, 워런 버핏, 박근혜 대통령 등 세계의 명사들이 망라돼 본인들이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오는 9월 이 작가는 터키의 의뢰를 받아 이스탄불 명소를 수로 표현한 전시회를 연다.

경주=송의호 기자 yee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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