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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FA의 고양이 전용 아파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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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정호
남정호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남정호
논설위원

명품점들이 몰려 있는 미국 뉴욕 미드타운. 이곳 한복판엔 58층짜리 검은색 초호화 아파트가 서 있다. 부동산 재벌이자 막말로 유명한 공화당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가 세운 ‘트럼프 타워’다. 최근 이 건물이 척 블레이저 전 국제축구연맹(FIFA) 부회장 때문에 화제가 됐다. 자가용 비행기에 온갖 사치를 일삼던 그가 자신의 애완 고양이 전용으로 트럼프 타워 내 아파트를 월 6000달러(약 700만여원)에 임대해 온 기행이 드러난 탓이다. 월세는 물론 검은돈으로 충당했다.

 1억5000만 달러(1700여억원)가 넘는 뇌물수수 혐의로 간부들이 미 수사당국의 도마에 오르면서 FIFA가 마피아화됐다는 비판이 쏟아진다. 제프 블라터 FIFA 전 회장에겐 ‘돈 블라테오네’란 별명이 붙었다. 영화 ‘대부’의 마피아 두목 ‘돈 코를레오네’에 빗댄 조롱이다.

 실제로 두 조직은 운영 방식부터 비슷하다. 마피아는 두목이 마약 등 불법 사업권을 중간 보스에게 주고 상납받는 구조다. FIFA 역시 회장이 임원들의 악행에 눈감는 대신 맹목적 충성을 얻어왔다. 현 FIFA 임원진은 월드컵 개최지 선정 때 1000만 달러(117억여원)씩을 챙겼다. 월드컵 경기 입장권도 빼돌려 대놓고 암표상에게 팔았다. 내부 사정은 입도 뻥긋 않는 행태까지 똑같다. ‘오메르타(Omerta)’라 불리는 마피아 세계 내 ‘침묵의 철칙’이다.

 하지만 미 의회 청문회에 나선 리처드 블루멘털 상원의원은 “FIFA를 마피아로 비유하는 건 마피아에 대한 모독”이라고 꼬집었다. 마피아가 고리대금업·마약거래 등 불법을 일삼을지언정 FIFA만큼 무능하진 않다는 거다. 실제로 마피아는 뛰어난 비즈니스 감각을 자랑한다. 『마피아 경영학』 등 이들의 조직 기술을 칭송하는 책들도 즐비하다.

 이 와중에 정몽준 대한축구협회 명예회장이 “생선은 머리부터 썩는다”며 FIFA 수뇌부 쇄신을 기치로 회장직 도전을 유럽에서 곧 선언한다. 워낙 큰 자리라 알리 빈 알 후세인 요르단 왕자를 비롯, 프랑스의 미셸 플라티니, 브라질의 코임브라 지코 등 왕년의 축구 스타들도 나선 상태다. 지난달 30일에는 아르헨티나의 천재 디에고 마라도나까지 “FIFA 마피아를 내쫓겠다”며 가세했다.

 정 회장은 FIFA의 불합리한 회계 처리와 의사결정을 비판, 핍박받던 인물이다. 당연히 개혁적 이미지면에서 유리하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김용 세계은행 총재에 이어 한국의 위상을 드높일 호기인 만큼 범사회적 지지가 바람직하지 않을까.

남정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