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출생증명서 가지러 케냐 온 건 아니다” 농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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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아버지 나라 케냐 방문 “한국의 발전 생각을” 버락 오바마 대통령(오른쪽)이 26일(현지시간) 케냐 나이로비의 사파리컴 경기장에서 연설을 마친 후 모여든 케냐인들의 손을 잡아주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연설에서 “내가 태어날 때까지만 해도 한국과 케냐는 경제 규모가 비슷했지만 현재 한국의 경제 규모는 케냐의 40배나 된다”며 “한국의 발전을 생각해 봐라”라고 투자와 경제 발전 필요성을 강조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 후 ‘아버지의 나라’인 케냐를 찾은 것은 처음이다. [나이로비 AP=뉴시스]
버락 오바마(가운데) 미국 대통령이 24일(현지시간) 케냐 나이로비 국제공항에 도착, 이복 누나인 아우마 오바마(왼쪽)를 만났다. 오른쪽은 우후루 케냐타 케냐 대통령. [나이로비 AP=뉴시스]

미국 현직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아버지의 고향’ 케냐를 방문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삼엄한 경호 속에 감격의 2박3일 일정을 마무리했다.

 지난 24일 밤(현지시간) 케냐 수도 나이로비에 도착한 오바마는 케냐 국민의 뜨거운 환영을 받았다. 우후루 케냐타 케냐 대통령이 공항까지 마중 나왔다. 현지 언론들은 일제히 ‘케냐여, 내가 왔다’는 제목과 함께 공항에 도착해 손을 흔드는 오바마의 사진을 실었다. 첫날 연설에선 스와힐리어로 ‘안녕하세요’란 뜻의 ‘잠보(jambo)’ 등 몇 마디인사말을 해 청중의 갈채를 받았다.

 오바마의 케냐 방문은 본인의 의지가 반영됐다. 미 정부와 언론이 케냐의 이웃나라 소말리아를 본거지로 삼는 극단주의 이슬람 무장단체 얄샤바브 때문에 “가장 위험한 외국 순방”이라고 일컬을 정도로 반대도 많았다.

 오바마는 지난 25일 연설에서 “(상원의원 시절인 2006년의 케냐 방문 이후 다시) 이곳에 돌아와 기쁘다. 내 이름이 ‘버락 후세인 오바마’인 데는 이유가 있다”며 케냐와의 인연을 강조했다. 하와이대에서 유학 중이던 오바마의 아버지는 캔자스 출신의 백인 스탠리 앤 던햄과 결혼했고 1961년 오바마를 낳았다. 그러나 이후 오바마의 부모는 이혼했고 부친은 82년 교통사고로 숨졌다.

 오바마는 2008년 대선 때 자신의 비판론자들이 “오바마는 미국 출생이 아니다”란 의혹을 제기해 하와이 출생증명서를 공개했던 것을 빗대 “미국 내 어떤 사람들은 내가 출생증명서를 찾으러 케냐에 왔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라고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다음엔 아마 양복을 입지 않고 (케냐에) 올 것”이라며 퇴임 후 케냐에서 인도주의 활동을 펼치겠다는 뜻을 밝혔다.

 오바마가 케냐에 따끔한 충고를 던지고, 케냐 대통령이 정면 반박하는 장면도 있었다. 25일 양국 정상 공동 기자회견에서 오바마는 “만연한 뇌물이 케냐의 빠른 성장을 막는 최대 걸림돌” “국가가 성적인 문제로 시민을 차별해선 안 된다”며 부패와 동성애 문제를 제기했다. 이에 케냐타 대통령은 “미국과 케냐가 공유하지 않는 가치, 그리고 우리 문화나 사회가 받아들일 수 없는 가치도 있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고 되받아 쳤다. 케냐를 비롯해 아프리카에선 동성애를 위법으로 규정하는 국가가 많다. 미 언론은 두 사람의 아버지들이 악연이 있다고 전했다. 케냐타 대통령의 부친(케냐의 초대 대통령 조모 케냐타)은 정치적 이견으로 케냐 관광부 경제학자였던 오바마의 부친을 해고했다. 오바마는 26일 연설에서도 “케냐가 전진이냐, 후퇴냐의 네거리에 서 있다”며 부패와 부족간 갈등, 테러리즘 문제 등을 지적했다.

워싱턴=김현기 특파원 luc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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