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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언호의 세계 책방 기행] “지펑 없는 상하이는 3류 도시” 시민 자존심이자 지식 허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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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7호 26면

1 지펑은 어떤 책을 비치할 것인지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1990년대 중국의 민영서점은 도처에서 꽃을 피워냈다. 93년에는 베이징(北京)의 완성(萬聖)서원이 문을 열었다. 94년에는 광저우(廣州)의 보르헤스가, 96년에는 난징(南京)의 셴펑(先鋒)서원이, 97년에는 항저우(杭州)의 펑린완(楓林晚)과 상하이(上海)의 지펑(季風)서원이 문을 열었다.

상하이 지펑서원

 한 도시의 문화적 랜드마크가 되기 위해선 여러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오늘의 상하이 지식인들은 품격 있는 인문도서를 비치해놓고 다양한 문화·예술·지식 프로그램을 펼치는 지펑서원을 상하이의 문화적 랜드마크라고 주저하지 않고 말한다. 인구 2500만의 국제도시 상하이, 신흥제국 중국의 경제도시 상하이 시민들은 서점 지펑이 펼쳐내는 지적 풍경을 하나의 긍지로 삼고 있다.

 지하철 10호선 상하이도서관역에 지펑서원이 있다. 상하이 시민들은 저녁나절 일이 끝나면 지펑에 있는 문제적인 인문학 책들을 만나기 위해, 이벤트홀에서 진행되는 담론과 공연에 참여하기 위해 상하이도서관역에 내린다. 오늘은 지펑서원에 어떤 신간을 비치해놓았는지, 이번 주에는 어떤 인사가 무슨 주제로 담론하는지에 진지한 관심을 보인다.

2 지펑은 매주 20여 권의 추천도서를 발표하고 회원들에게 온라인으로 알린다.

창립자 옌보페이 “서점은 시민사회”
오늘의 지펑서원을 만든 창립자 옌보페이(嚴搏非)를 우선 언급해야겠다. 화둥(華東)사범대학에서 공부한 옌보페이는 문화대혁명 이후 대학 본과 첫 졸업생이다. 서점업에 뛰어들기 전 10여 년 간 상하이사회과학원에서 중국 근대사상사를 연구했다. 옌보페이에게 서점이란 미국의 과학소설가 아이작 아시모프의 작품에 나오는 ‘기지’ 같은 것이다. 인류의 어두운 미래를 밝혀주는 ‘희망의 등대’다.

 “서점이란 한 시대의 사유와 사상이 표현되는 공간이고 책의 선택과 진열이 그 행위다. 서점이란 시대정신이 자유롭게 표출되는 공간이다. 서점은 태생적으로 시민사회다.”

 지펑서원은 문을 열면서부터 ‘독립된 문화적 입장, 자유로운 사상의 표현’을 사시로 내세웠다. 서점의 사회적 명성은 ‘책의 선택과 진열’이다. 옌보페이는 “책의 선택과 진열이 지펑의 가장 중요한 전략”이라고 단언한다. 세계의 고전과 오늘의 중국인과 중국사회가 요구하는 책들, 열린 문제의식을 담론하는 지성을 독자들에게 제시한다.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와 존 롤스, 발터 베냐민과 자크 라캉, 세계은행의 보고서와 전위예술이 지펑의 주제적 책들이다.

 지펑은 매주 『지펑서신』(季風書訊)을 발행해 온라인으로 독자들에게 보낸다. 직원 5, 6명과 함께 옌보페이가 주편하는 북리뷰로, 2015년 7월 초 현재 406호까지 발행했다. 매주 20여 권의 책을 추천한다. 406호가 ‘중점 추천’하는 예젠후이(葉健輝)의 『토피아: 라틴 아메리카 해방신학 연구의 초보』에 대해 옌보페이는 쓰고 있다.

 “68년 세계를 휩쓴 혁명적 물결 가운데 우리가 아는 것은 ‘프랑스의 5월 혁명’, 미국의 반전운동과 신좌파 운동, 체코의 ‘프라하의 봄’, 홍위병과 문화대혁명이다. 이런 것들 못지않게 당대를 휩쓴 ‘해방신학’에 대해서 우리는 알지 못한다. 해방신학은 매우 특수한 혁명운동이다. 천주교 신부들이 68년에 가난한 자들을 위한 투쟁에 뛰어들었다. 군부독재에 맞서 해방신학은, 기독교의 핵심은 ‘전지전능’이 아니라 ‘전선(全善)’이라고 주장했다. 기독교는 고난의 세계를 변화시킬 책임이 있으며, 이를 통해 신의 존재를 증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68년부터 78년까지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성직자 850명이 가난한 자들을 위한 투쟁에서 목숨을 잃었다. 피델 카스트로는 ‘라틴 아메리카의 혁명에서 해방신학은 마르크스보다 더 중요하다. 기독교는 가장 영광된 역사를 만들었다’고 했다. 『토피아』는 인민이 일어나 저항해야 유토피아가 현실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저자의 이런 태도와 생각을 지지한다.”

3 지펑의 입구엔 ‘독립적 문화입장, 자유로운 사상표현’을 내걸었다.

문 닫을 판 되자 “지펑을 보위하자” 농성
지펑이 기획하는 담론과 대화에 초대되거나 참여하는 작가·학자·지식인들의 면면이 대단하다. 작가 베이다오(北島)와 첸단옌(陳丹燕)과 예푸(野夫), 건국 후 중국의 언어정책을 주도한 언어학자 저우유광(周有光)이 시민들과 만났다. 방글라데시의 빈곤퇴치 운동가로 2006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무함마드 유누스가 강연한다. 여름방학을 맞아 청소년을 위한 철학강좌가 연속으로 진행된다. 지펑은 상하이라는 거대한 자본주의 속에 둥지를 튼 정신의 오아시스다.

 지펑은 짧은 기간에 급속하게 성장했다. 8개의 분점을 두었다. 2004년부터 2005년까지 지펑은 전성기였다. 그러나 인터넷 상거래 파도가 거세게 덮쳐왔다. 독서 인구도 줄어들었다. 인터넷이라는 기계와 물질은 공공 영역에서 사유를 밀어낸다. 옌보페이의 진단을 빌릴 것도 없이 “정신과 사상을 사정없이 할인한다.” 인터넷 상거래란 “정신과 사상의 세계를 담아내는 책의 세계에서는 일종의 흉기 같은 것”이다. 독자들은 서점에 와서 책을 살펴보고 목록을 적는다. 그러고는 인터넷으로 책을 구입하는 참으로 야박한 일이 벌어진다. 상하이의 지식인·문화인·언론인들이 탄식하는 사이에 지펑은 빠르게 혹한의 계절을 맞았다.

 지펑은 지하철역을 중심으로 서점을 열었다. 가장 물질적이고 대중적인 공간을 따라 지적이고 정신적인 공간을 존재시키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펑과 상하이지하철공사의 10년 임대차 계약이 2008년에 만료되었다. 공사는 임대료 인상을 통보해왔고 지하철 1호선 산시난루(陝西南路) 본점은 문을 닫아야 할 판이었다.

 이 소식은 문화계 인사들과 독자들에게는 충격이었다. 청년들이 ‘지펑보위(保衛)’를 위해 연좌농성을 계획했다. 인터넷에는 연좌농성 참여를 독려하는 글들이 올라왔다.

 “지펑에서 새로운 지식을 세례받은 사람들, 지펑에서 알게 되어 의기투합한 사람들, 지펑에서 감동의 새 책을 발견한 우리들은 엄숙하고 친근하며 온화한 지펑을 좋아한다. 우리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지펑에 나붙는 목록과 독품(讀品)을 좋아한다. 지하철을 타고 산시난루 역을 지날 때면 지펑이 생각나서 미소 짓는다. 먼 길을 떠나와서도 지펑이 생각난다. 지펑은 1호선의 심장이다. 과로한 직장인의 마음의 안식처다. 지펑이 문 닫으면 상하이는 삼류도시가 된다.”

 ‘지펑이 문 닫으면 상하이는 삼류도시가 된다’는 구절이 상하이 시민들의 심금을 울렸다. 산시난루 본점은 각계 인사들의 주선으로 임대차 계약을 연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상업자본과의 대응은 그리 오래 지속될 수 없었다. 2010년 쉬자후이(徐家匯) 분점이 문을 닫았다. 2011년 지펑예술서점과 징안(靜安) 분점, 라이푸시(來福士) 분점도 잇따라 문을 닫았다. 개업한 지 15년 된 2013년에는 가장 오래된 롄화루(蓮花路) 분점이 문을 닫았다. 임대료 상승과 인터넷 상거래의 할인공세를 견뎌내지 못했다. 산시난루 본점도 마침내 폐업을 선언했다.

독자로 드나들던 위먀오가 어려움에 처한 지펑에 투자해 공익서점으로 살려냈다.

독립성 지키려 정부지원 안 받아
상하이 시민들의 문화적 자존심 지펑은 그러나 쓰러지지 않았다. 지펑의 독자 위먀오(于淼)가 나섰다. 자본을 투입하고 새 대표에 취임했다. 상하이의 지식인·문화인·독자들은 두 손을 높이 들어 환호했다.

 “지펑은 나의 정신세계를 일으켜 세워준 곳이다.”

 위먀오는 99년에 독자로서 지펑을 처음 찾았다. 2012년 11월 지펑이 곤경에 빠졌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지펑을 ‘공익적인 서점’으로 계속 운영하기로 결정했다. “지펑의 인문정신을 일관되게 유지할 것이다.”

 2013년 4월 23일, 세계 책의 날을 맞아 ‘새로운 지펑’이 지하철 10호선 상하이도서관역에서 문을 열었다. 언론들은 ‘지펑의 존속’을 잇따라 보도했다. 다른 한편으로 ‘민영서점의 앞날’이 그리 밝지 않다는 분석도 내놓았다.

 “옌보페이 선생은 여전히 지펑의 정신적 지도자이자 ‘독서 총감독’으로 지펑의 창립정신을 이어가고 있다. 여느 서점은 책을 하나의 상품으로 취급하지만 우리는 책으로 사상과 가치를 구현하고자 한다. 나는 지펑의 문화이념과 사상이 좋아서 투자했다.”

 새 경영자 위먀오는 오프라인 서점의 생태 변화에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산시난루 옛 본점보다 공간은 약간 줄어들었지만 200㎡의 이벤트 공간을 새로 마련하고 카페 기능도 강화했다. 서점의 문화활동을 계속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 위먀오의 문제의식이다.

 “이 공간에서 진행되는 논단과 독서회, 신간 사인회, 음악회, 연극공연, 독립영화 상영이 직접적인 경제효과를 가져오지는 못하지만 결국에는 더 많은 젊은이를 동원해낸다.”

 일주일에 2~3회 열리는 행사에 100~150명이 참여한다. 모든 프로그램은 무료다. 저명 인사들도 지펑의 행사에 참여하고 싶어 한다.

 위먀오는 오전에는 자신의 다른 회사에 나가서 일하고 오후에는 서점으로 나와 일한다.

 “오전에 벌어 오후에 쓰는 편이다.”

 지펑은 5만여 권의 책을 비치하고 있다. 하루에 평균 300권 정도씩 판매된다. 카페공간이 약간 도움을 준다. 서점이 빌려 쓰는 공간이 국가기관인 상하이도서관의 것이기 때문에 임대료는 그렇게 비싸지 않다.

 “지펑 같은 서점은 정부가 좋아하지 않는다. 우리의 고유한 성격을 지키기 위해, 독립을 유지하기 위해 정부 지원을 받지 않는다.”

 버지니아 울프, 샤를 보들레르, 에드워드 사이드,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사뮈엘 베게트, 존 케이지의 사진 액자가 걸려 있다. 이것만으로도 세계로 열려 있는 지펑의 지향을 읽을 수 있다.

 ‘지펑’이란 새로운 바람을 의미한다. 계절이 바뀌면 새로운 바람이 분다. 새로운 사상이다. 창립자 옌보페이와 어려움에 처한 지펑을 맡은 위먀오는 새로운 바람과 시대정신을 호흡하고 있다.

 홍콩의 『밍바오』(明報) 주필을 지낸 작가이자 역사학자인 웨이청스(魏承史)는 상하이에 가면 지펑에 들르라고 권한다.

 “지펑서원은 우리들 정신의 화원이다.”

 지펑서원에서 오늘의 상하이 시민들은 하버마스와 하겐다스, 칼비노와 카푸치노를 하나의 쇼핑백에 담을 수 있다.


김언호 동아일보 기자를 거쳐 1976년 한길사 창립. 한국출판인회의·동아시아출판인회의 회장과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 역임. 파주북소리 조직위원장과 출판도시문화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으며 『책의 탄생』 『책의 공화국에서』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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