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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 약속 같은 ‘오픈프라이머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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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현 기자 중앙일보 사회 디렉터
김승현
JTBC 정치부 차장대우

“술 끊겠다”는 약속은 지금도 남발되고 있다. 오늘 아침에도 대한민국의 적지 않은 가정에서 금주(禁酒)가 선포됐을 것이다. 그 또한 허언(虛言)이 될 공산이 크다는 걸 주취자와 가족은 안다. 가족들도 죄인을 엄벌에 처할 만큼 배짱이 두둑하지는 않다. 우리나라 음주 문화는 과도하게 보편적이어서 ‘사회 생활과 술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고 학습돼 있기 때문이다. 대신 실속은 있는 자리였는지 짚고 넘어가고 싶어 한다. “누구랑 마셨어”라는 질문이 나오는 이유다.

 최근 여의도 정가에서 거론되는 ‘오픈프라이머리(open primary·완전 국민경선)’ 논의를 보다 보면 황당하게도 이런 ‘금주 약속’이 떠오른다. 자주 거론되니까 꼭 실천돼야 할 것 같은데, 도무지 현실이 될 것 같지 않다는 점이 닮아서다.

두 사안에 대한 몇몇 정치인들의 논평과 필부들의 반응 역시 싱크로율이 높다. ‘당위이지만 불능이다’로 요약된다.

“(오픈프라이머리)그게 되겠어요”(재선 A의원), “말이야 좋지만, 현실을 인정해야지”(3선 B의원) 하는 식이다. “완전 국민경선은 아니더라도 일부라도 도입해 봤으면 좋겠다”(재선 C의원)는 의견은 “금주까지는 아니더라도 절주(節酒)는 필요하다”는 주장과 닮았다.

 또다른 유사성은 ‘술은 과연 독(毒)인가’ 하는 근본적인 의문이다. 여기서 술은 정당의 공천권에 비유할 수 있다. 오픈프라이머리는 사실상 공직 후보자에 대한 공천권을 국민에게 준다는 얘기다. 공천부터 민주화하면 결국 정당 민주주의도 실현된다는 논리다. 수십 년간 공익 정당으로서 행사한 공천권은 민주주의의 독이었는가. 전략 공천을 받은 정치 신인과 지역 인재는 모두 실패였는가.

 이쯤 되면 비유를 다시 원점으로 돌릴 필요가 있다. 몸에 해로운 것은 술이 아니라 과음이었고, 민주주의를 공격한 것은 공천권이 아니라 계파주의였다. 과음 때문에 술이 욕을 먹었던 것이고, 계파주의를 극복하지 못한 공천권은 오픈프라이머리 밑에 깔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술(공천권)에 무죄를 선고할 수는 없다. 과음과 절주의 애매모호한 경계를 제대로 구분하는 능력을 우리가 지니지 못했기 때문이다. 금주 선언이 계속되어야만 절주가 가능하듯 오픈프라이머리 역시 계속 소환돼야 계파의 폐해를 견제할 것이다.

 닭이 먼저인지, 계란이 먼저인지 헷갈릴 때의 목표는 실익과 발전이어야 한다. 그래서 술자리를 누구와 함께 했는지가 중요하고, 오픈프라이머리의 깃발을 누가, 어떤 마음으로 들었는지에도 주목해야 한다. 총선을 9개월 앞둔 여당 대표가 나선 지금 상황은 의미심장하다. 다만, 자신의 사회적 그물망을 다 끊어버릴 각오로 덤벼야 할 일에 왜 나섰는지 여전히 설명이 부족해 보인다. 국민들이 잘 모르면 제아무리 엄중한 일도 작심삼일짜리 금주 선언처럼 비춰질 수 있다.

김승현 JTBC 정치부 차장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