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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솟는 전·월세에 건물 통째 빌려 공동주거 … 마포 청년들 달팽이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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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집 없던 민달팽이 청년들에게 안락한 달팽이집이 생겼다. [오종택 기자]

치솟는 전·월세에 건물 통째 빌려 공동주거 … 마포 청년들 달팽이집

‘1인 가구’ 17명 공동 출자 … “집세 오를 걱정 없어요”

서울 서대문구 남가좌동에 사는 황금실(28·여)씨는 아침에 눈을 뜨면 베란다로 나간다. 집 근처 홍제천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스트레칭으로 하루를 연다. 몸을 풀고 나면 거실에서 룸메이트 3명과 식사를 한다. 금실씨가 사는 집은 일명 ‘달팽이집’으로 불리는 공동주택이다. 그는 올 1월 룸메이트들과 66㎡짜리 이 집으로 이사했다. 1인당 보증금 60만원, 월세 23만원을 내고 집을 공유하는 조건이다.

 여기 오기 전까지 금실씨는 5년간 고시원 신세를 졌다. 5㎡짜리 방을 혼자 썼는데 보증금은 없었지만 30만원의 월세를 냈다.

 “이전 고시원은 햇빛이 전혀 비치지 않았어요. 거기 비하면 여긴 베란다에 주방·거실·욕실까지 다 있으니 천국이나 다름없죠.”

 그가 사는 집은 2009년 생겨난 ‘민달팽이유니온’이란 이름의 협동조합이 기획했다. 조합은 금실씨 같은 1인 가구들의 주거 문제를 해결하는 걸 목표로 설립됐다. 올해 조합원들의 공동출자금 2억원에 서울시의 사회투자기금 5억원을 보태 4층짜리 건물(연면적 220㎡)을 5년 계약으로 통째로 빌렸다. 금실씨를 포함해 이 건물에 사는 17명의 조합원은 5년간 임대료 인상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임경지(27·여) 조합위원장은 “쾌적한 주택에서 장기간 갈등 없이 살게끔 하는 게 우리의 최대 관심”이라며 “예비 입주자들이 두 달간 워크숍을 하면서 함께 살 만한 사람인지를 판단하는 기회를 거쳤다”고 설명했다. 조합원 중 한 명인 임소라(32·여)씨는 “달팽이집은 단순한 거주자 모임이 아닌 새로운 가족의 탄생”이라고도 했다.

 ‘함께주택협동조합’도 민달팽이유니온처럼 주거 문제를 시민 스스로 해결하려는 단체 중 하나다. 이 조합의 박종숙(43·여) 이사장이 “개인의 주거 문제를 국가가 해결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인식에서 2013년 만들었다. 조합은 지난해 마포구 성산동에 3층 높이 198㎡ 규모의 주택 한 채를 사들였다. 서울시로부터 빌린 5억원의 사회투자기금에 조합원 45명이 낸 2억7000만원을 보태서다. 조합원이 된 1인 가구 10명이 주방과 욕실을 함께 쓰며 살 수 있는 공유주택으로 집을 리모델링했다. 집은 조합 소유이며, 조합원은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30만원을 부담한다. 조합원 스스로가 집주인이며 세입자이기 때문에 월세 인상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먹거리 교육을 받은 초등학생들이 수료증을 들고 있다. [사진 구로 아이쿱생협]

 민달팽이유니온과 함께주택협동조합의 사례가 시민 스스로 주거 문제를 해결 하려는 것이라면 구로구 엄마들은 자녀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직접 먹거리 감사에 나선 생활정치 케이스다.

 엄마들이 움직이게 된 것은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터진 게 계기였다. 2013년 8월 서울시는 ‘방사능으로부터 안전한 식재료 공급에 관한 조례’를 만들었다. 구로구 주부들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학교 급식 재료에 대한 검사를 좀 더 강화하기 위한 구 조례안 제정에 나섰다. 제정 운동에 참여했던 이은영(42·여)씨는 “아이들 급식인데 국가가 조례를 지정해주기를 수동적으로 기다리기보다는 능동적으로 필요한 것들을 만들어 나가고 싶었다”고 말했다.

 주민발의엔 유권자 2%(7000명)의 신상 정보가 필요했다. 주어진 기간은 3개월, 결코 만만치 않은 도전이었지만 구로구 엄마들은 목표를 초과 달성해 8000명에게 서명을 받았다. 2014년 11월 조례는 통과됐지만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구의원들이 예산 배정에 소극적이었던 것이다. 반면 구의원들은 자신의 집무실 개조 비용으로 3억원의 예산을 편성해 놓고 있었다.

 엄마들은 다시 뭉쳤다. 예산안에 대한 의정보고가 있는 날마다 직접 회의장을 찾아가 의견을 피력했다. 마지막 의정보고 때는 16명의 구의원 전부에게 장미꽃을 일일이 선물했다. 꽃에는 ‘아이들을 지켜주세요’라는 문구가 달려 있었다. 엄마들의 장미꽃 시위로 인해 구의원 집무실 개조 예산 편성은 백지화됐다. 대신 급식 재료 검사 예산으로 3600만원을 따냈다.

 조례 제정 후에도 주부들은 직접 초·중·고교를 방문해 2시간 동안 아이들을 위한 먹거리 안전교육을 한다. 처음에는 회원들의 자녀가 다니는 초등학교에서만 교육했다. 현재는 20여 개 학교에서 방과후 교육을 맡아 학생들에게 안전한 먹거리 지식을 알려주고 있다. 주부들의 먹거리 안전교육을 돕는 구로 아이쿱 생협의 박기일(45·여) 이사장은 “한 아이의 엄마로서 아이들을 가르치기 때문에 어떤 방식으로 교육을 해야 아이들이 교육 내용을 잊어버리지 않을까 항상 고민한다”고 말했다.

◆달팽이집=여러 명의 1인 가구가 공동으로 매입 혹은 임차해 함께 생활하는 공유주택을 일컫는다. ‘집’(껍데기) 없이 맨살로 다니는 민달팽이들에게 집을 만들어주자는 취지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특별취재팀=윤석만·노진호·백민경·김민관 기자, 정현령·전다빈 인턴기자,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김준영·김한울 연구원 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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