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충제 사이다’ 안 마신 80대 할머니 구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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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상주시 살충제 사이다 사건의 용의자로 체포된 80대 할머니가 구속됐다.

 대구지법 상주지원은 20일 “범죄 사실을 믿을 만한 근거가 있고 도주 및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다”며 박모(83) 할머니에 대해 살인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상주시에서는 지난 14일 할머니 6명이 살충제가 든 사이다를 마시고 2명이 숨졌다.

 경찰이 영장에 담은 증거 중 주요한 내용은 세 가지다. 우선 살충제 성분이 남은 자양강장제 병이 박 할머니 집 마당에서 발견됐다. 살충제가 든 1.5L 사이다 페트병에 씌워져 있던 자양강장제 뚜껑과 같은 종류의 제품이다. 살충제 원액 병 역시 할머니 집에서 나왔다. 또 박 할머니 옷과 타고 다니던 노인용 소형 전동차 손잡이에서 사이다에 들었던 것과 같은 살충제 성분이 검출됐다.

 경찰은 영장에 정황 증거도 제시했다. 처음 출동한 119 구급차의 블랙박스 영상이다. 구급차는 마을회관 마당에 쓰러진 신모(65) 할머니를 본 주민 신고로 출동했다. 구급차가 왔을 때 용의자인 박 할머니 역시 마당에 있었다. 실내에는 할머니 5명이 의식을 잃고 쓰러진 상태였다. 하지만 박 할머니는 구급차를 보고 돌아서 다른 곳으로 걸어갔고, 위급한 할머니 5명이 더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구급차는 마당에 있던 신 할머니만 싣고 갔다. 다른 할머니들은 그로부터 50여 분 뒤 마을회관에 들른 다른 주민이 신고해 병원에 옮겨졌다. 박 할머니는 사건 당일 현장에 있으면서도 신고를 하지 않았다. 그는 나중에 경찰에서 “(쓰러진 할머니들이) 잠을 자는 줄 알았고 입에서 거품이 나길래 닦아 줬다”고 진술했다.

 박 할머니는 영장이 발부된 뒤에도 변호사를 통해 범행을 부인했다. “만약 범인이라면 증거물을 집에 두겠는가. 누군가 (뒤집어씌우기 위해) 살충제 성분이 든 자양강장제를 할머니 집에 갖다 놓았다”는 등의 주장이다. 또 “옷과 전동차에 남은 살충제 성분은 다른 할머니들 입에서 나온 거품을 닦아 주는 과정 등에서 묻은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에 대해 경찰은 “쓰러진 할머니들 토사물에선 살충제 성분이 나오지 않았으므로 입을 닦아 주기만 해서는 옷에서 살충제 성분이 나올 수 없다”고 맞섰다. 또 “바지 끝자락에서 살충제 성분이 검출된 점 또한 납득하기 어렵다”고 했다.

 경찰은 구속된 박 할머니를 상대로 범행 이유를 조사하고 있다. 전오성 상주경찰서장은 “사건 전날 박 할머니가 마을회관에서 화투놀이를 하다 살충제 사이다를 마신 할머니 중 한 명과 말싸움을 했다는 증언이 있다”며 “사실 여부를 확인 중”이라고 말했다.

상주=김윤호 기자 youknow@joongang.co.kr

현장 출동 구급차 보고 신고 안해
살인 혐의 … 할머니 범행 계속 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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