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눈치 안 보고 벤처 투자하게 민간 자본만으로 조합 결성 허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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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앞으로 정부 개입 없이 민간투자자끼리 조합을 만들어 벤처기업에 투자할 수 있게 된다. 정부 눈치를 보지 않는 과감한 투자를 유도하기 위한 조치다. 금융위원회는 19일 이런 내용의 ‘중소·벤처기업 투자 활성화 방안’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벤처투자조합 결성 때 정부 참여를 의무화한 규정이 없어진다. 지금까지 벤처조합은 2005년 만들어진 중소기업청의 모태펀드 출자를 받는 자펀드만 허용됐다. 2000년대 초반 벤처 거품 붕괴를 겪은 뒤 정부의 통제하에 안정된 자금을 공급하자는 취지였다. 이런 방식으로 지난 10년간 6000여 개 벤처기업에 10조원이 투자됐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이 규정이 벤처 특유의 창의성과 역동성을 방해하는 과도한 규제로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투자 때마다 공시를 통해 이를 알려야 하는 것은 물론 투자 결과에 대해서도 감사를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실제 국내 벤처캐피털의 정부 출자 비중은 지난해 40%로 미국(17%)·중국(23%)·영국(24%)보다 훨씬 높다. 정부는 이런 지적을 받아들여 앞으론 모태펀드 출자 없이도 벤처투자조합을 설립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조만간 관련 내용을 담은 벤처기업육성특별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기로 했다.

 벤처 투자자에 대한 세제 지원도 늘린다. 중소·벤처기업에 투자하는 사모투자펀드(PEF)에 벤처조합 수준의 배당소득 비과세와 양도소득세 감면 혜택을 준다. 그간 PEF는 벤처투자조합이나 신기술조합과 똑같이 벤처에 투자하면서도 세제 혜택은 받지 못했다. 증권사·자산운용사의 신기술금융사 겸영도 허용한다. 증권시장의 자금이 벤처에 투자될 수 있도록 물꼬를 터주기 위해서다. 신기술금융사는 실적은 없지만 기술력이 있는 벤처기업에 전문으로 투자하는 금융회사다.

 벤처투자자가 수익을 거둬들이는 회수시장도 활성화한다. 우선 투자자 지분을 중개하거나 매매하는 2차 시장(세컨더리마켓) 펀드를 조성한다. 지금은 기업공개(IPO)나 인수합병(M&A) 말고는 벤처투자자가 지분을 팔 수 있는 길이 없다. 이런 맹점을 해결하기 위해 벤처 투자지분 중개를 전문으로 하는 세컨더리마켓 펀드가 내년까지 3000억원 규모로 조성된다. 또 금융투자협회의 비상장주 장외시장에 벤처 지분 전문 거래 장터 가 생긴다.

이태경 기자 uni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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