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대어·산호 춤추고 별 쏟아지고 솔 향기 솔솔~ ‘푸른 낙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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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칼레도니아 일데팽에서 보트를 타고 30여 분 정도 달리면 무인도 노캉위섬이 신기루처럼 모습을 드러낸다. 하얀 모래사장에서 바라본 바다의 물빛은 옅은 하늘색부터 짙은 남색까지 다양하게 펼쳐진다.

자동차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한참을 달렸다. 왠지 지루해져 와이파이도 잡히지 않는 스마트폰을 두드리던 참이었다. “다들 창밖 좀 보세요!” 일행 중 누군가가 소리쳤다. 스마트폰 불빛에서 눈을 떼 창 밖을 본 순간 탄성이 터져 나왔다. 천지(天地)에 먼지 같은 별이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자정을 넘긴 시각, 통투타 공항에서 숙소로 이동하다 발견한 뉴칼레도니아의 첫 풍경이다. 푸른 바다와 천혜의 자연환경이 일품이라는 남태평양에서 시작부터 웬 별 타령이냐 물으실지 모르겠다. 푸른 바다와 솔 향 품은 열대림이 뉴칼레도니아의 기본이라면 반짝이는 별은 옵션이랄까. 물론, 추가 요금은 없다.

작지만 많은 걸 품은 수도

새벽부터 문을 열어 정오면 닫는 누메아 아침시장

뉴칼레도니아는 1853년 나폴레옹 3세가 점령한 이후 줄곧 프랑스령으로 남아 있다. 현재는 이 땅에 뿌리내리고 살아온 멜라네시안 원주민 카낙(kanak)과 유럽 이민자가 어우러져 살고 있다. 뉴칼레도니아 공존의 역사를 인구 8만 명의 작은 수도 누메아(Noumea)는 잘 보여준다. 열대나무 사이로 유럽풍의 건축물이 눈에 띈다. 도시 자체가 크지 않아 해변을 따라 여유롭게 걸으며 이국의 정취를 느끼는 일도 즐겁다.

앙스바타의 석양. 한 젊은이가 윈드서핑을 즐기고 있다.

누메아의 아침 풍경은 아침시장에서 시작된다.

누메아의 유일한 재래시장으로 새벽 5시에 문을 열어 정오면 파장한다. 현지에서 나는 과일과 육류 등 식료품부터 원주민이 만든 팔찌 등 기념품까지 다양한 상품이 아침시장에서 오고 간다. 원주민과 관광객이 뒤섞여 북적이는 시장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모젤항에 정박한 수많은 호화 요트가 해양 도시의 낭만을 더한다.

누메아의 전경을 보러 우엔토로 언덕에 올랐다. 전망대에서는 바다 위에 떠 있는 크고 작은 섬부터 누메아 교외의 몽도르산까지 한눈에 들어왔다. 누메아 여행의 필수 코스라는 치바우 문화센터도 들렀다.

독특한 외관이 인상적인 치바우 문화센터의 전경

나무 뼈대를 이어 만든 독특한 구조물은 파리 퐁피두 센터를 설계한 건축가 렌조 피아노가 원주민 카낙의 지도자 장 마리 치바우를 추모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원주민 전통 가옥 ‘카즈(case)’와 예술품이 전시돼 있다.

여정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 앙스바타 해변에서 걸음을 멈췄다. 빨간 노을이 진 해변에서 청년들이 윈드서핑을 즐기고 있었다. 바람 따라 그들은 바다 위로 높이 솟구치다, 다시 또 내려앉았다.

자연과 인간이 가까워지는 섬

뉴칼레도니아 원주민 카낙의 전통 가옥인 카즈(case)

뉴칼레도니아의 국조(國鳥) 카구는 날지 못한다. 높이 40m가 훌쩍 넘는 뉴칼레도니아의 소나무 아로카리아는 만져도 따갑지 않다. 길가에 피어있는 뉴칼레도니아의 꽃에서는 좀처럼 향기가 나지 않는다. 모두 ‘천적’이 없어서다. 뉴칼레도니아에서는 인간도 자연의 적이 되지 못한다.

뉴칼레도니아의 남쪽 섬 일대팽(ile des pins)은 불어로 ‘소나무 섬’이라는 뜻이다. 제주도 10분의 1 크기의 이 작은 섬에는 3000명이 모여 산다. 누메아에서 비행기로 25분 거리다. 착륙 직전 창문으로 내다본 일데팽은 발을 딛기 전부터 여행자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이온음료 맛이 날 것 같은 해변과 하늘 높이 솟아오른 솔숲이 눈에 들어왔다. 자동차가 차선도 없는 숲 속 도로를 달렸다. 대중교통도, 기념품 가게도 없었다. ‘그렇다면 당장 저 차창 밖으로 보이는 에메랄드빛 물에 몸을 담가보리.’ 충동이 밀려왔다.

일데팽에는 자연이 만들어낸 오로 풀장이 있다. 큰 바위들이 흘러들어온 바닷물을 막아 머물게 하는 곳이다. 물속에서 무언가가 자꾸만 다리를 간질였다. 스노클링 장비로 물속을 들여다봤다. 온갖 무늬의 열대어가 이방인의 출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스쳐 지나갔다. 산호들은 물결을 따라 춤을 췄다. 손을 뻗었다. 손끝에 작은 물고기가 와 닿았다.

다시 차를 타고 흰 모래사장이 펼쳐진 쿠토 해변으로 갔다. 온 세상의 푸른색을 다 담은 것 같은 물의 색감과 한없이 청명한 하늘이 거기에 있었다. 석양도 아름다웠다. 농염한 하늘, 그 빛을 받아 반짝이는 바닷물, 야자수 위로 미리 마중 나온 별 하나까지 사랑스러웠다.

바다가 사랑받는 이유

무인도 노캉위 섬 가는 길에 마주친 어린 바다거북

일데팽 해변에서 보트를 타고 30여 분을 달리면 신기루 같은 섬이 하나 나온다. 무인도 노캉위(Nokanhui) 섬이다. 노캉위로 가는 길에는 시시각각 색깔이 변하는 바다와, 새가 머무는 바위섬, 바다 냄새를 머금고 거칠게 불어오는 바람이 있다. 바다거북도 만나볼 수 있다. 잠시 보트를 멈추고 물 안에 들어가 바다거북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거북은 사람의 손길을 피하지 않았다.

하늘색·에메랄드색·파란색·코발트…. 어휘력을 시험하는 온갖 색이 노캉위에 있었다. 답답한 신발을 벗어 던졌다. 죽은 산호가 만들어낸 곱고 하얀 모래가 부드럽게 발을 감쌌다. 모래사장 한편에 쓰러져 있는 고목들은 하나의 고독한 조각상이었다. 그 옆에 우뚝 선 열대나무가 바람에 따라 흩날렸다. 파도는 ‘파’ 음으로 다가와 ‘도’ 음으로 사라졌다.

보트를 타고 무인도 몇 군데를 더 돌았다. 투어 내내 동행하던 열 살짜리 현지인 소년 스테판이 예쁜 소라껍데기 몇 개를 내밀었다. 고맙다고 불어로 짧게 인사말을 건네자 소년은 부끄러운 듯이 고개를 까닥이고는 바삐 걸음을 옮겼다. 왜 바다가 오랜 시간 많은 이의 사랑을 받을 수밖에 없는지, 남태평양의 작은 섬은 말해주고 있었다. 여행자는 그만 귀향(歸鄕)이 두려워졌다.

집이나 마을 앞에 서서 원주민들을 지킨다는 장승

●여행정보=현재 국내에는 뉴칼레도니아로 가는 직항 노선이 없다. 대신 도쿄(東京)을 경유하는 뉴칼레도니아 국제항공사 에어칼린(aircalin.co.kr)을 이용할 수 있다. 에어칼린은 도쿄∼누메아 노선을 주 5회(화·수·목·토·일요일) 운영한다. 비행시간은 약 9시간. 에어칼린 3708-8581.프

랑스 호텔 체인 르메르디앙(starwood hotels.com/lemeridien)은 누메아와 일데팽에서 가장 관광객이 많은 리조트다. 대중교통이 많지 않은 뉴칼레도니아에서는 자동차를 렌트하는 게 편하다. 투숙 호텔에 국제면허증을 제시하고 요청하면 된다. 렌트 비용은 보통 하루 9만원 선이다. 대신 기어가 수동이다. 일데팽에서는 노캉위 섬을 비롯한 무인도 투어를 빼놓지 말자. 1인 15만~18만원. 무인도에서 먹는 로브스터 점심이 포함된 가격이다. 현지 호텔에서 예약이 가능하다.

글·사진=홍상지 기자 hong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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