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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와 유커 헤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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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최형규
최형규 기자 중앙일보 부데스크
최형규
베이징 총국장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이 진정 국면이다. 유커(遊客·중국 관광객)들의 한국 관광 문의도 조금씩 늘고 있다. 정상화까지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우리 정부의 ‘메르스 종료’ 선언과 함께 한국을 찾는 그들의 발길은 분명 늘어날 것이다.

덩달아 정부든 관광업계든 ‘유커 귀환’ 환영 행사로 야단법석을 떨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또 “언제 그랬느냐”는 듯 잊을 것이다. 우리의 냄비 근성이 항상 그래 왔으니까. 그러나 이번만은 정부든 국민이든 정말 긴 호흡으로 고민 좀 해보자. 메르스 이후 유커 실종 사태가 던지는 메시지 말이다.

 우선 유커의 괴력은 처절하게 겪었다. 이는 숫자가 말해 준다. 지난해 한국 방문 유커는 612만 명. 전체 외국인 관광객(1420만)의 43%다. 삼성증권은 현재 유커가 10%만 감소해도 1조5000억원의 국내 소비 위축으로 이어진다고 분석한다. 메르스 발생 이후 유커가 절반 이상 줄었으니 한국 경제가 어떤 충격을 받았을지 짐작이 간다.

한데 이런 유커를 우리는 너무 당연하게 생각했다. 명동과 동대문, 그리고 제주도에 매일 넘쳐났던 그들은 우리의 일상이었다. 그러다 메르스 한 방에 한국 관광산업은 거의 마비가 됐다. 언제까지 우리의 ‘기회’일 줄 알았던 유커가 우리의 ‘위험’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거다. 늦었지만 다행이다. 여기서 상식 있고 정상적인 정부라면 가장 먼저 관광산업의 지나친 중국 의존이 가져올 위험을 어떻게 최소화할지 고민할 것이다. 이른바 ‘유커 헤징(Hedging)’이다. 지금이야 한·중 관계가 괜찮아 넘어가지만 조금이라도 삐끗하면 중국은 가장 먼저 유커 발목부터 잡을 게 뻔하다.

실제로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에서 북핵·이어도 영토 분쟁 가능성까지 한·중 관계를 악화시킬 수 있는 지뢰는 곳곳에 잠복해 있다. 첫 대안은 역시 일본 관광객 유치다. 정부가 대일 관계 개선에 더 심각하게 고민해야 하는 이유다. 그뿐인가. 엔저에 대응하는 원화 절하를 위해 어떤 외교가 필요한지 고뇌해야 한다. 중국에 올인하는 관광 마케팅을 동남아와 유럽·미주로 분산시킬 로드맵도 필요하다.

중국 정부 정책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개인 유커를 잡기 위한 대책도 소홀히 하면 안 된다. 예컨대 개인 유커가 한국에서 불편을 호소하는 숙박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중국의 중저가 호텔 체인망인 루자(如家)나 치톈(七天)의 한국 진출을 적극 돕고 지방 관광지의 인프라 개선을 위한 정책도 추진해야 한다.

정부도 할 말은 있을 것이다. 지난달 문화체육관광부가 메르스 관련 관광업계 대응 방안을 내놓아서다. 한데 발표한 106개 관광진흥책 중 63개(59.4%)는 재탕이었다. 그나마 한류 스타를 이용한 마케팅이 대부분이었는데 신선한(?) 게 하나 있었다. 이전에는 김수현을 한류 마케팅 아이콘으로 내세웠는데 이번에는 이민호가 등장했다는 점이다. 물론 유커 헤징 대책은 없었다.

최형규 베이징 총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