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근로자 73%가 원하는 임금피크제를 막는 노동단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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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임금피크제는 노동 개혁의 첫 단추다. 내년부터 시행되는 정년 60세를 앞두고 당장 도입해야 하는 화급한 제도다. 이 첫 단추를 근로자들은 잘 끼워야 한다고 여긴다. 한국고용노사관계학회가 100인 이상 사업장에서 일하는 1000명의 근로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10명 중 7명이 임금피크제가 필요하다고 했다. 정년 60세가 법으로 보장돼 자신들의 권리가 된 마당이다. 굳이 임금 삭감을 감수하지 않아도 되는데 일정 나이가 되면 임금을 깎는 데 선뜻 동의했다. 그 이유가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자신들의 고용 보장뿐 아니라 미래 세대인 청년의 고용과 기업의 경쟁력 약화를 우려해서라고 한다. 가진 것이 조금밖에 없는 서민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라 할 만하다. 염치가 있고, 배려가 진하게 묻어난다. 이게 그리스와 한국의 차이다. 자기 것만 챙기기보다 함께 살기 위해 힘을 합치고, 가진 것을 내려놓을 줄 아는 성숙함이 엿보여서다.

 그런데 소득이 높은 대기업 정규직이 주된 축을 이루고 있는 노동단체는 총파업으로 임금피크제 도입을 저지하겠다고 한다. 민주노총은 15일 2차 총파업에 돌입하겠다고 했다. 한국노총은 1997년 이후 18년 만에 총파업을 결의하고, 조만간 농성에 들어갈 태세다. 노동단체는 근로자를 존립 기반으로 하는 조직이다. 10% 안팎의 기득권을 가진 조합원이 아니라 전체 근로자의 생각을 잘 읽어야 하는 건 의무다. 그런 면에서 물리력 동원을 내세운 두 노총의 행동은 그들만의 정치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근로자의 지지를 받을 리 만무하다.

 그동안 국책연구기관과 민간연구소에서는 임금피크제가 도입되지 않은 채 정년 60세가 시행되면 많은 부작용이 발생한다고 경고했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정년연장으로 내년부터 2020년까지 기업이 져야 하는 추가 부담액은 107조1000억원에 달한다. 10% 선인 청년 실업률이 16%로 뛰고, 청년 실업자가 30만 명 가까이 늘어난다.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면 추가 부담을 25조9100억원 정도 줄일 수 있다. 이 돈으로 청년을 고용하면 정규직 근로자 31만3200명을 추가로 뽑을 수 있다. 인건비 부담을 덜어 기업의 경쟁력이 높아지면 일자리는 더 늘어날 수 있다. 청년 고용을 늘리는 것은 세대 간 갈등을 줄여 사회적 비용을 떨어뜨리는 순기능도 발휘한다. 이런 경고가 노동단체에는 먹히지 않았지만 설문조사에서 보듯 근로자들은 공감하고 있다.

 이제 노동단체가 답할 때다.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생존전략이 투쟁인지, 화합인지. 정부도 다양한 지원책을 내놔야 한다. 이번 설문조사에서도 근로자들은 정부의 역할을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