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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변덕 심한 금융시장, ‘그렉시트’에도 대비할 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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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그리스 국민의 선택은 결국 ‘NO’였다. 5일 실시한 국민투표에서 그리스는 20%포인트가량의 압도적인 차이로 긴축과 고통을 감내하라는 채권단의 제안을 거부했다. 주요 외신은 ‘천천히 죽는 길과 빨리 죽는 길’ 중 그리스 국민이 후자를 선택했다고 전했다. 알렉시스 치프라스 총리는 정치적 승리를 거뒀다며 곧바로 추가 구제금융 협상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치프라스 총리가 채권단의 신뢰를 잃은 상황이라 추가 협상의 성사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게다가 지금껏 긴축을 요구해 온 독일을 비롯한 채권국이 갑자기 태도를 바꿔 부채를 크게 깎아줄 리는 없다. 그리스 국민은 ‘그렉시트(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로 이어질 수 있는 험난한 여정을 스스로 선택한 셈이다.

 그리스의 선택은 당장 국제 금융시장에 충격을 주고 있다. 어제 중국·일본 등 아시아 주요 증시는 일제히 하락했다. 우리 증시도 오후 들어 낙폭이 커지고 원화가치도 하락했다.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가능성을 시장이 좀 더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얘기다. 그리스가 유로존에서 떨어져 나가면 유럽은 물론 세계 금융시장은 메가톤급 충격이 불가피하다. 파국이 그리스에 그치지 않고 이탈리아·포르투갈 등 남유럽으로 불통이 튀면 이게 다시 유로존 전체로 전염돼 세계 경제가 동반 추락하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지금까지 그리스 충격을 극히 제한적일 것으로 봤다. 교역 및 투자 규모가 작은 데다 그리스의 유로존 이탈 가능성도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스의 국민투표로 사정이 달라지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그렉시트가 현실화하면 우리의 유럽 수출이 7.3%포인트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가뜩이나 부진한 수출이 더 타격을 입게 된다. 우리 경제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중국 경제도 더 깊은 침체로 끌려 들어갈 수 있다. 아무리 외환보유액이 넉넉하고 재정 건전성이 좋다지만 글로벌 금융시장은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할 만큼 변덕스럽다. 언제 쓰나미처럼 우리 시장을 덮칠지 모른다. 최악의 경우를 대비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