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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성 키우기 힘든 질병관리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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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민경
백민경 기자 중앙일보 기자
충북 오송읍 질병관리본부 입구의 표석. ‘질병으로부터 자유로운 …’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서울 은평구 녹번동에 있던 본부가 2010년 이곳으로 이주할 때 함께 옮겨 왔다. [사진 보건복지부]
백민경
사회부문 기자

“질본(질병관리본부)요? 잠깐 있다가 떠나는 ‘대기실’에 가까워요.” 지난달 29일 오후 청주시 오송읍 질병관리본부 앞에서 만난 정모(33) 연구원은 이렇게 말했다. 처음엔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사태를 겪는 한 연구원의 개인적 푸념이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보건복지부 산하 방역 최일선 조직인데, 말 못할 사정이 있겠지 싶었다. 그래서 이날 그곳에서 스무 명이 넘는 연구원들을 만나 같은 질문을 던졌다.

 대부분이 이직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면담한 연구원 중 상당수가 계약직으로, 정씨와 비슷한 생각을 품고 있었다. 보건학을 전공한 김모(38) 연구원은 “다른 비정규직과 똑같아요. 내 미래를 생각해야죠”라고 했다. “경력과 실적을 ‘스펙’ 삼아 민간연구소 연구원이나 교직원으로 가고 싶다”고 고백한 사람도 있었다. 조모(33) 연구원은 ‘사명감’을 언급했다. 하지만 그마저 “연구사(6급 공무원 대우)가 되면 오히려 연봉은 줄어들고 공무원연금 등의 혜택 등으로 근근이 버티게 된다”며 한숨을 쉬었다. 국가기관 산하 연구소에서 근무하는 것은 보람 있는 일이지만 처우를 생각할 때 평생 직장으로 삼고 싶지는 않다는 얘기였다. 현재 국립보건연구원을 포함한 질본 전체 인원 930명 중 비정규직이 624명(67%)이다.

 질본 내 모든 구성원이 이들처럼 생각하고 행동하지는 않을 것이다.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만으로 비전문가로 단정할 수도 없다. 하지만 신종 감염병인 메르스와의 싸움이 40일을 넘고 있는 상황에서 방역 최전선에 있는 연구원들이 이곳에서 자신의 미래를 찾을 수 없다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질본이 어떤 방식으로 인력을 충원하는지 궁금했다. 프로젝트가 생겨날 때마다 필요한 만큼 해당 분야 전공자를 뽑는다고 한다. 지원자들은 보건학·간호학·생물학·전산학 등 전문분야에서 석·박사까지 적어도 10년 넘게 공부한 경력자로, 대부분 30대 중반이다. 이렇게 들어온 이들이 계약직으로 근무하며 정규직의 ‘좁은 문’을 바라보다가 다른 곳으로 이직한다. 실제로 사스·신종플루 때 활약했던 이들이 지금 질본엔 거의 없다. 전병율 연세대(전 질병관리본부장) 교수도 “좋은 인재들을 키우지 못하고 내보내야 하는 건 조직뿐 아니라 국가에도 큰 손실”이라고 안타까워 했다.

 메르스는 머지않아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메르스와 싸웠던 경험은 사라져선 안 될 소중한 자산이다. 구성원들이 질본을 ‘대기실’로 여기며 언제든 떠날 곳으로 여기는 한 이 경험은 온전히 축적되지 않는다. 전문가를 키우지 않고서는 그들이 꿈꾸는 ‘질병으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은 오지 않는다.

백민경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