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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로변의 열정 페이, 법무부도 책임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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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임장혁
사회부문 기자·변호사

“선배 변호사 배 부르자고 신입을 쥐어짠다.”

 “엉터리 변호사를 가르치는 것도 번거로운 일이다.”

 최근 인터넷에선 신참·고참 변호사들 간에 날 선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대한변호사협회(변협)가 1일 변호사시험(변시) 합격자들의 무급 실무수습제도를 도입하면서 ‘수습 변호사=무급’ 공식이 굳어지는 데 따른 현상이다. <본지 6월 30일자 12면>

 이미 법조계에선 변시 합격자를 정식 채용하지 않은 채 무급이나 저임금으로 활용하려는 악덕 고용주들이 기승을 부리는 상태였다. 여기에 무급 수습제도까지 도입되면서 한 달에 150만~200만원씩 지급해오던 중소형 로펌이나 법률사무소에도 무급 전환의 명분이 생긴 것이다.

 한 법무법인에서 3개월째 수습 중인 변호사 김모(32)씨. 그는 매일 야근과 주말 근무를 반복하지만 받는 돈은 월 100만원 안팎이다. 6개월 수습을 마쳐도 정식 채용될지는 불확실하다. “그래도 무급보다는 나은 편”이라며 푸념하는 김씨와 같은 처지의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이 매년 1000여 명씩 법조타운 골목으로 쏟아지고 있다.

 실무수습을 ‘교육’으로 보느냐, ‘근로’로 보느냐에 따라 근로기준법 위반 논란도 불거질 수 있다. 이에 대해 고용주인 로펌이나 법률사무소 대표들은 “수습 변호사가 가압류 같은 기본 절차도 모른다. 처음부터 가르쳐야 한다”고 말한다.

 신참 변호사 입장에선 평생 법조인으로 먹고살 수 있는 자질을 갖춰야겠다는 생각에 연수기간 동안의 ‘열정 페이(저임금 노동 착취)’를 감수하게 된다. 문제는 연수 주관기관인 변협에 실무 연수를 감당할 역량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사법연수원처럼 제대로 된 시설이나 프로그램도 없다. 현장 실무연수 때 좋은 ‘사수’를 만나느냐는 오로지 수습 변호사의 인맥과 운에 달렸다.

 이런 상황에 대한 기본적 책임은 로스쿨에 있다. 3년 동안 변시 과목을 가르치는 데 급급해 실무교육은 뒷전이다. 하지만 변시와 실무연수 감독을 맡고 있는 법무부의 책임도 작지 않다. 실무수습을 둘러싼 논란이 확산되고 있는데도 법무부는 “좀 더 지켜보자”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법조계에서 “교육시설과 인력을 갖춘 사법연수원을 활용하자”는 아이디어가 나오자 법원 역시 “연수원의 빈 공간은 법원도서관 서고로 활용할 계획”이라며 난색을 표하고 있다.

 변호사는 피의자 인권 보호 등 우리 사회에서 공공적 역할을 맡아야 할 전문직이다. 변호사의 품격이 떨어지면 결국 법률서비스의 수준이 낮아져 소비자인 국민이 피해를 보게 된다. 법무부와 로스쿨은 시장의 실패를 더 이상 방치하지 말고 사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임장혁 사회부문 기자·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