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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 넘겨받은 유승민·정의화의 선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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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김형구 기자 중앙일보 기자
김형구
JTBC 정치부 차장대우

“유승민. 잘 버티고 살아남아 ‘OECD 수준 보수’의 씨앗이 되어 주길 바란다.”

 “정의화. 점잖으면서도 강한 근골과 뚝심이 있는 분이다. 직접 만나 보면 느낌이 올 것이다.”

 살벌하게 전개되는 여권 내전 속에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지난 27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 눈길을 끈다. 조 교수는 새정치민주연합의 혁신위원으로 합류해 있다. 친박계와 비박계의 혈전을 바라보는 야권의 정략적 관전법이 묻어난다. 속된 말로 ‘주군에게 찍힌’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공개적으로 응원했다. 문제가 된 국회법 개정안의 운명을 다룰 정의화 국회의장에 대해서는 “여당의 대권 주자 다크호스”라고 치켜세웠다.

 박근혜 대통령의 이른바 ‘6·25 작심 발언’ 수위가 예상을 훨씬 뛰어넘긴 했지만, 사실 박 대통령과 유 원내대표가 루비콘 강을 건넜다는 징후는 꽤 오래전부터 감지됐다. 친박계 한 의원은 이달 초 사석에서 “박 대통령과 유 원내대표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고 전했다. 유 원내대표 핵심 측근인 비박계 한 의원도 비슷한 시기에 “청와대가 우리를 좀 믿어 줬으면 좋겠다”는 하소연으로 불신이 깊은 상황임을 시사했다.

 당·청 내전의 최대 관심사는 유 원내대표의 거취 문제로 귀결되고 있다. 그런데 어찌 보면 더 큰 싸움은 청와대로 대표되는 행정부와 국회 입법부의 힘겨루기일 수도 있다.

 지난 25일 박 대통령이 정치권 전체를 ‘공공의 적’으로 지적한 대목을 곱씹어 보면 표현 하나하나가 예사롭지 않다. “정치는 그동안 정부 정책에 대해 끊임없는 갈등과 반목, 비판만을 거듭해 왔습니다” “국민의 삶을 볼모로 이익을 챙기려는 구태 정치는 이제 끝을 내야 합니다.”

 행정부 수반의 이런 ‘선전포고’를, 입법부 수장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정의화 의장의 계산이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사실 정 의장 측에서는 청와대의 초강경 기류를 이미 읽었던 것 같다. 그리고 대통령이 국회법 개정안을 국회로 돌려보내면 재의결에 부치겠다는 생각도 처음부터 확고했던 듯하다. 그동안 명분 쌓기를 해 온 흔적도 보인다.

 박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기 하루 전날, 정 의장은 “박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저 “인생 67년 살았고, 정치 20년 해 온 사람의 직감”이라고만 했다. 이 말은 오히려 “거부권 행사는 당연히 안 하는 것 아닌가. 그럼에도 해 온다면 헌법대로 재의에 부칠 수밖에 없다”는 뜻을 반어적으로 표현한 것 아닐까.

 또 하나, 정 의장이 ‘여당 국회의원의 정무특보 겸직’ 문제에 대해 “허용할 수 있다”는 결정으로 나름 ‘선물’을 안겨 준 측면이다. 여와 야 사이에서 이쪽에 하나를 주면 저쪽에도 하나를 주는 기계적 형평을 최대한 맞추려 한 정 의장이다. 다음에는 어느 쪽으로 기울지 짐작할 수 있다.

김형구 JTBC 정치부 차장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