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병진노선 불가능” … 중국, 미국 입 빌려 북핵 반대 공식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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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은 24일(현지시간) 백악관 각료실에서 가진 전략경제대화에서 한반도 비핵화와 사이버 안보 문제 등을 논의했다. 오른쪽부터 존 케리 국무장관, 버락 오바마 대통령, 조 바이든 부통령. 왼쪽부터 류옌둥 부총리, 양제츠 외교담당 국무위원. [워싱턴 AP=뉴시스]

시진핑(習近平)의 중국과 김정은의 북한이 ‘병진(竝進) 정책’을 놓고 금이 가고 있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등장 후 북한의 최고 노선으로 내걸린 핵과 경제의 병행 개발이라는 병진 정책에 대해 중국이 24일(현지시간) 미국의 입을 빌어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백악관은 이날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류옌둥(劉延東) 부총리, 왕양(王洋) 부총리, 양제츠(楊潔<7BEA>) 외교담당 국무위원 등 중국 대표단을 접견한 자리에서 “핵과 경제를 동시에 개발하려는 노력이 성공하지 못한다는 점을 북한에 보여주는게 근본적으로 중요하다는 점을 논의했다”고 발표했다. 백악관은 “양측은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약속을 재확인했다”고도 덧붙였다. 이날 백악관을 찾은 중국 인사들은 국제 사회의 이목이 쏠린 제7차 미·중 전략경제대화에 참석차 워싱턴을 방문중이었다.

 백악관 발표는 미국 통수권자인 오바마 대통령과 중국 고위 인사들이 만나 병진 정책의 비현실성을 논의했다고 공개했다는 점에서 이례적이다. 수전 라이스 미국 국가안보보좌관과 양제츠 국무위원이 지난 2월 뉴욕 회동 때 병진 노선이 성공하지 못한다는데 공감한 데 이어 논의의 격이 더 높아졌다. 외교 소식통은 “백악관은 ‘논의했다’고 발표했지만 이는 중국 역시 병진노선이 성공할 수 없다고 미국과 공감했음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라며 “미국 대통령이 자리한 최고위급 외교 테이블에서 중국이 병진정책을 논의했다는 자체가 북한에 대한 압박”이라고 지적했다. 이지용 국립외교원 교수는 “중국은 백악관 발표를 빌어 북핵을 용인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명확히 표명했다”며 “류옌둥, 왕양 부총리 등은 현 중국 지도부의 실세들”이라고 지적했다.

 북한의 핵 개발에 중국이 예전과 달리 반대 입장을 더욱 선명하게 하는 배경에는 시진핑 주석이 추구하는 ‘대국 중국’에 북핵이 걸림돌이 된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그래서 미국과 곳곳에서 충돌을 빚는 중국의 대국굴기(大國<5D1B>起)가 북핵에 관한 한 미국과 교집합을 만드는 역설이 등장했다. 김흥규 아주대 중국정책연구소장은 “개발도상국 시절 중국은 주변 문제에 개입하는 것을 꺼렸지만 시진핑 시기에 들어와선 주변 국가 때문에 중국의 대외 정책이 흔들리게 하지 않겠다는 대국주의를 분명히 하고 있다”며 “북핵은 그 자체로 동북아의 불안이자 위협인데다 중국의 통제를 벗어난 핵이 될 수 있어 중국의 국익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북한은 병진 정책에 리더십의 사활을 걸고 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이 집권 이듬해인 2013년 3월 병진 노선을 제시한 뒤 북한 관영 매체들은 ‘핵 개발=민생’이라는 궤변성 논리까지 개발했다. “핵무기를 개발하면 재래식 무기 생산·운용에 들어가는 군사비가 줄어든다”고 주장했다. 지난 3월 31일자 노동신문은 병진 정책을 “역사적 사변”이라며 “병진 노선을 틀어쥐고 강성국가 건설을 위한 투쟁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병진 노선의 진리성은 시간이 흐를수록 뚜렷해졌다”며 병진 정책을 정당화하는데 전력투구했다. 일각에선 김 제1위원장의 병진 정책은 할아버지 김일성 주석이 1960년대 주창했던 중공업과 국방 병진 노선을 닮았다고 분석했다. 그럼에도 그간 순망치한(脣亡齒寒)의 관계를 과시했던 중국까지 북한의 핵 개발에 반대하면서 북한의 고립은 더욱 가속화할 전망이다.

워싱턴=채병건 특파원, 서울=전수진 기자 mfem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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