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인턴기자의 '현장에서'] 국회 본회의장과 복싱경기장의 "잘했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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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설 대학생(중앙대 경영학부) 인턴기자

“잘했어!”

국회의원들의 질의가 끝나면 국회 본회의장에는 우렁찬 칭찬이 울려 퍼졌다. 22~24일 국회 대정부질문 현장을 지켜본 인턴기자의 눈에는 흥미로운 광경이었다.

언론에서 국회는 주로 싸움터로 묘사되곤 한다. 내 머릿속 국회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나마 국회선진화법이 만들어진 이후 물리적 충돌은 사라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국회를 생각하면 본회의장 가운데 있는 의장석을 중심으로 몸싸움하던 의원들의 모습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질의를 마치고 자리로 돌아오는 의원들에게 “잘했다”고 격려를 보내는 모습이 낯설었던 이유다.

이런 훈훈한 장면을 지켜보다 공교롭게 복싱 경기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상대방을 흠씬 두드려 패고 온 선수, 그런 선수의 땀을 닦아주는 코치가 수건을 건네며 하는 말, “잘했어”가 오버랩된 것이다. 경기를 이기고 있는 복싱선수와 대정부질문을 마친 의원, 둘 사이에서 ‘공격’이라는 공통점을 발견했다.

대정부질문은 국회의원이 국민을 대신해 행정부의 업무에 관해 국무총리와 장관들에게 묻는 자리다. 묻는 쪽과 답하는 쪽이 정해져 있다. 그런 까닭에 일방적 질타가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특별히 ‘공격’이라 느낀 이유는 묻는 방법이 예사롭지 않기 때문이다.

호통치기, 말 끊기, 질문만 하고 대답은 듣지 않기 등 다양한 공격이 본회의장에서 활용됐다. 질의내용과는 별개로 질문 방식에 대해 “잘했어”라는 격려를 보내도 될지에 대한 고민에 빠질 무렵 “아주 잘했어”라는 극찬 소리가 들렸다. 유난히 공격적이었던 의원에게 쏟아진 격려였다.

정작 격려가 필요하다고 생각된 의원의 질문이 끝났을 때는 오히려 본회의장이 조용했다. 새누리당 황인자 의원은 메르스 때문에 자녀를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보내지 못하는 ‘워킹맘’에 주목했다. 황 의원은 여성가족부가 관할하는 ‘아이돌봄지원사업’이 일하는 여성에게 꼭 필요한 사업임을 강조하며 김희정 여성가족부 장관에게 정부의 재정지원을 확대해 줄 것을 요청했다. 호통이나 질책은 없었지만 생활 속에서 꼭 필요한 문제를 진지하게 다루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

정보요원의 활약상을 그린 영화 ‘킹스맨’에 나오는 대사다. 전설적인 베테랑 요원인 주인공 콜린 퍼스(해리 하트 역)는 이 말을 한 뒤 동네 불량배들을 처참하게 때려줬다. 그 폭력적인 장면을 두고 쉽게 ‘매너’를 떠올린 관객은 아마 없을 것이다. 매너를 말하는 상류층의 ‘비 매너’를 꼬집은 장면인 까닭이다.

“잘못을 꾸짖을 때도 상냥할 필요가 있느냐”는 반박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국민을 대표한다는 이유로 상대의 인격을 무시해도 된다는 법은 어디에도 없는 것 또한 사실 아닌가. 본회의장에 울려 퍼진 “잘했어”가 의원들끼리의 칭찬이 아닌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울림이 돼야 진정한 매너가 아닐까.

이설 대학생(중앙대 경영학부) 인턴기자 sul_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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