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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메르스 상황실장이 현장에서 고민한 해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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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정철근 기자 중앙일보 에디터
권용진
국립중앙의료원 상황실장

벌써 37일째다. 발생자 수는 줄고 있지만 또다시 나타날 수퍼전파자에 대한 두려움은 여전하다. 첫 번째 사망환자를 하늘나라로 보내 드렸고, 첫 번째 퇴원환자를 축하해 드렸다. 지금은 에크모 적용 3명, 인공호흡기 적용 6명, 투석환자 4명의 중증환자와 확진환자, 의심환자들이 병실에서 메르스와 사투를 벌이고 있다. 의료진은 우리 사명이라 치지만, 환자와 그 가족들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이제야 싸움이 중반을 넘어서고 있는데 정치권과 언론은 대책 마련을 촉구하기 시작했다. 최전방 장수의 입장에서 몇 가지 대안을 얘기하고자 한다. 감염병 전문가가 아닌 지난 한 달간 국립중앙의료원 상황실장으로서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하는 제언이다.

 시간별로 보면 가장 먼저 발생하는 상황은 첫 번째 환자를 판정하는 것이다. 첫 번째 환자가 확진되기 위해서는 역학적 연관성, 임상적 특징, 검사 결과가 일치되어야 한다. 이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당연히 역학적 연관성이다. 첫 번째 환자가 메르스 발생국을 여행했다고 말했으면 좀 더 빨리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다. 두 번째 상황은 확산 차단이다. 확진자와 밀접 접촉자를 격리하고 의심환자들을 관리하는 것이다. 평택성모병원의 병실에 배기구가 있었더라면, 응급실 병상 간 간격이 3m가 넘었더라면, 환자 가족들이 병문안을 오지 않았더라면 하는 등의 아쉬움이 남는다. 세 번째 상황은 음압격리병상에서 이루어지는 치료다. 가볍게 감기처럼 지나가는 사람은 열이 떨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객담검사가 두 번 음성이 나오면 집으로 간다. 반면 폐렴이 심각해지는 사람들은 매일 사진을 찍고 나빠지면 인공호흡기를 달고 더 심하면 에크모까지 달아야 한다.

 이런 시간대별 진단에서 정부의 위기 대응 능력의 부족은 부인할 이유도 없고 산하기관의 상황실장으로서 부족함도 반성한다.

 책임 논의는 차치하고 지금 대안을 논의한다면 앞서 말한 시간대별 과정이 원활하게 돌아가도록 하는 것이 목표가 될 것이다.

 가장 필요한 것은 좋은 거버넌스다. 위기대응 거버넌스는 책임 있게 통제할 수 있는 권한과 전문성, 경험을 갖춘 조직이어야 한다. 몇몇 전문학회나 몇 명의 유능한 공무원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감염전문가, 역학전문가, 위기대응전문가, 행정공무원 모두가 협력해야 한다. 각자의 전문성을 국민을 위해 내어놓고 합의하고 조정하고 민첩하게 행동할 수 있는 좋은 거버넌스가 필요하다.

 둘째는 행동하는 전문인력이다. 진단을 위해서는 감염내과전문의가 필요하다. 모든 병원에 배치할 수 없다면 지역사회마다 감염위원회를 만들고 의심되는 환자가 병원에 방문했을 때 연락하고 협진할 수 있는 네트워크가 있어야 한다. 이것이 지방자치정신에도 부합한다. 확산을 차단하기 위해서는 역학전문가가 필요하다. 질병관리본부의 지방분원이면 적절할 것 같다. 중앙본부가 지식과 제도, 연구를 담당하고 지방분원은 긴급대응과 역학조사를 담당하면 된다. 치료를 위해서는 훈련된 인력이 필요하다. 방호복을 입고 벗을 때 감염위험을 피하고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잘 훈련된 인력이어야 한다. 어떤 상황이 발생해도 당황하지 않고 숙지된 매뉴얼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정예 요원 말이다.

 셋째는 병원 인프라다. 확진환자가 124명까지 동시에 입원한 적이 있었다. 여기에 의심환자들까지 더하면 족히 200여 명이 동시에 음압병실에 있었다는 얘기다. 전국적으로 본다면 음압병실이 많이 부족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평소에도 결핵이나 다른 감염병 환자들이 입원해 있다는 점, 민간병원의 동원이 어렵다는 점 등이 음압병실을 많이 갖춘 감염병전문병원이 필요한 이유다. 그렇다면 전문병원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지난 한 달여 동안 국립의료원에는 민간병원은 기피하고 중증환자라서 작은 병원엔 갈 수 없는 여러 명의 환자가 입원했다. 감염병전문병원이 단순히 음압병실만 많다면 반쪽짜리가 될 것이다. 중환자 치료장비와 모든 진료과의 잘 훈련된 의사·간호사 등의 의료인력이 있어야 한다. 특히 중환자실, 수술실, 영상의학과 촬영실, 검사실 등이 설치돼 있어야 한다. 이런 인력들이 평소에는 아무 일도 안 하다 감염병 발생 때만 일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평시와 비상시의 전환체계가 필수적이다. 그래야 예산을 낭비하지 않을 수 있다. 300병상 규모의 병원이 이런 기능을 수행하기에는 역부족일 것이다.

 더 근본적인 것은 평시 대응체계일 것이다. 민간과의 협조가 필수적인 우리나라 의료체계를 감안한다면 평시에 의료체계의 대응태세를 점검하고 준비하는 책임자가 있어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보건복지부에 보건차관이 생기길 기대한다. 보건차관이 있다면 질병관리본부의 대응능력도, 민간과의 협조도 늘 준비할 수 있을 것이다.

 장수가 전쟁 중에 싸움보다 정책을 논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장의 목소리가 전해지기를 바란다. 국립중앙의료원은 마지막 한 명까지 책임진다는 각오로 오늘도 격리병동을 지키고 있다.

권용진 국립중앙의료원 상황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