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 유흥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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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이탈리아 폼페이견적을 둘러보노라면 거리에 남성의 심벌을 조각해 놓은 것이 많다. 그것이 가리키는 곳으로 가보면 사창가의 입구에 이르게 된다.
「베티형제의 집」이라고 하는 대저택. 이곳의 입장료는 남자가 1천5백리라 (2천3백원), 여자가 그 2배다. 벽에는 생생한 춘화도들이 눈길을 끈다. 벌써 2천5백년 전에도 그런 유흥 풍속이 있었다.
파리엔 밤의 여인들이 나타나는 지역이 있다. 밤 9시가 지나 샹젤리제 거리나 마들렌사원 근처에서 자동차를 멈추고 있다.
하지만 파리엔 피갈이란 유명한 유흥가가 따로 있다. 바의 휘황한 불빛이 눈길을 끄는 쇼 윈도마다 매혹적인 자태를 한 여인의 사진들이 경염을 벌인다.
로마의 유흥가는 베네프거리다. 그 주변의 작은 클럽들이 관광객을 끈다.
그러나 유흥분야에선 서독의 명성이 세계적이다.
함부르크의 상파울리, 레파반거리는 특히 유명하다. 50채나 되는 건물마다 눈 높이로 작은 쇼 윈도가 붙어 있다. 그 창으로 방안을 들여다 보면 도발적인 포즈를 취한 여인들을 볼수 있다. 에로스 센터가 유명하다.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에도 중앙역 근처 세인트 니콜라스교회 부근에 바로 밤의 거리가 있다.
프랑크푸르트의 카이저거리, 뉴욕의 42번가, 런던의 소호등은 세계적 명성을 가진 유흥가다.
나라마다, 도시마다 특징이 있는 유흥지역이 있다는건 홍미롭다.
우리나라에도 예부터 유락의 속이 있었다. 일정한 기예를 가지고 살던 기생도 있었다. 그들중 뛰어난 사람은 관기가 되고, 혹 양반계층의 첩이 되거나 매소부가 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정말 밤의 여인이라고 할 수 있는 계층은 갈보였다.
고려건국 이전에 달단에서 온 양수척이란 종족이 그 자녀와 처를 팔았던데 유래한다.
고려중엽엔 음풍이 성해 창기전문업자가 있었다. 그런 풍속으로 해서 고려속요엔『쌍화점』이란 노래도 나올수 있었다.
갈보는 색주가나 자기집 혹은 포주의 집에서 몸을 팔았다. 조선후기를 거쳐 일제시대에도 태평로, 북창동, 충무로변에서 버젓이 등을 달고 영업했다.
식민치하 서울엔 공창이 있었다. 인천의 화가정, 부산의 완월정도 알려진 유흥가였다.
정부가 청소년 유해환경 정비방안의 하나로 유흥·향락업소를 일정구역안에 집단화하려는, 이를테면 쌍화점 계획은 어느면 수긍이 간다.
주택가건 학교 부근이건 가리지 않고 놀자판이 되어가는 형편에선 차라리 유흥지역을 설정하는 편이 현실적일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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