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성조숙증 막고 키 크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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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논에 물 댈 때와 자식 입에 먹을 것이 들어갈 땐 먹지 않아도 배부르다’는 옛말이 있다. 맛있게 먹는 아이를 보며 건강하게 자라주기만을 바라는 심정은 부모의 마음이다. 하지만 많이 먹는다고 해서 건강한 건 아니다. 키가 크지 않을 수 있다. 성장을 망치는 성조숙증은 8세 미만 여아, 9세 미만 남아에게서 주로 나타난다. 비만이 적(敵)이다. 남들보다 더 잘 먹어서 뚱뚱하려니 하고 넘겼다간 성조숙증의 사각지대에 아이를 방치해 두는 격이다. 성장클리닉을 운영하는 서정한의원 박기원 원장에게서 우리 아이 더 크는 법을 들어 본다.

"밥그릇 크기 줄이고 지방 적은 고기 먹여 비만 예방 신경써야"

최근 아들 성민(8·가명)군과 함께 한의원을 찾은 주부 김영임(40·가명)씨는 깜짝 놀랐다. 아들에게 성조숙증이 생길 수도 있다는 진단을 받았기 때문이다. 성민군은 휴대전화 속 폭력 게임에 빠진 데다 기름진 음식을 즐겨 몸이 뚱뚱하다. 게다가 김씨는 딸(10)의 초경을 하루라도 늦춰 더 많이 클 수 있도록 하는 데에만 집중했던 터라 아들의 성조숙증을 예방하는 방법이 따로 있는 줄 몰랐다. 다행히 성민군의 성장판이 닫히지 않아 김씨는 아들이 더 건강하게 잘 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기로 다짐했다.
 성민군처럼 소아비만은 성조숙증의 큰 원인이다. 체지방률이 높아지면 성호르몬이 빨리 분비되면서 성장 속도를 늦추기 때문이다. 또 소아비만은 성장호르몬의 기능을 떨어뜨린다. 소아비만을 막으려면 아이가 동물성지방 섭취를 줄이는 것이 필요하다. 박 원장은 “고기는 살코기와 지방으로 나뉘는데 이중 지방만 피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뚱뚱하면 성호르몬 일찍 분비
음식 그릇 사이즈를 줄이면 쉽게 식사량을 줄일 수 있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접시 지름이 1960년대 평균 23㎝에서 2010년 30.5㎝로 커지면서 미국 남성의 허리가 35인치에서 39.7인치로, 체중은 75㎏에서 88㎏으로 크게는 것으로 조사됐다.
 운동은 비만을 막으면서 성장호르몬 분비를 촉진하고 성장판을 자극한다. 그런데 성숙이 빠르게 진행되는 아이들은 대체로 움직이기 싫어한다. 대개 또래보다 몸무게가 더 나가는 이유도 있지만 갑작스러운 신체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박 원장은 “아이가 운동을 지겨워하지 않도록 가족이 함께 놀이처럼 운동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씨름·유도·레슬링·역도 등 체중을 늘리는 운동은 장시간 하지 않도록 한다. 이들 운동은 근육량을 늘리지만 키 성장에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박 원장은 “댄스·배구·농구·달리기·걷기·탁구·배드민턴 등은 근육의 길이가 길어지게 해 성장판을 위·아래로 자극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 원장은 이어 “운동을 마친 후 약 30분이 지나면 성장호르몬이 가장 많이 분비되는데 이때 우유 한 컵가량의 단백질을 섭취해 주면 효과적”이라고 덧붙였다.

‘19금’ 매체도 성조숙증 원인
SNS·TV·컴퓨터 등은 아이가 세상과 통하는 접점이다. 하지만 온갖 자극적 정보들에 노출되면 아이의 감각을 자극한다. 아이가 과다한 자극에 노출되면 호르몬 분비를 조절하는 뇌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해 성조숙증으로 이어질 수 있다. 게임·TV 속 선정적인 장면도 마찬가지다. ‘19금’ 매체는 아이들의 성 발달 시기를 앞당길 수 있다. 가정불화 같은 불안한 감정도 성조숙증을 유발할 수 있다. 생존 본능 때문이다. 박 원장은 “인간은 위험요소를 감지할수록 생식능력을 일찍 가져 번식할 수 있도록 생체시계가 빨리 돌아 간다”고 설명했다.
 여자 아이가 생리를 시작하거나 남자 아이에게 수염이 나는 2차 성징은 ‘곧 성장이 멈출 것’이라는 예보나 다름없다. 박 원장은 “사실 초경을 언제 할지, 수염이 언제 날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며 “중요한 건 성장판이 열려 있는 동안 성장판을 자극해 더 클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 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3세부터 사춘기 전까지는 1년에 4~6㎝ 자란다. 하지만 사춘기가 시작되면 호르몬 변화로 이전보다 더 빨리 성장한다. 그러므로 2차 성징이 나타나기 전에 아이가 부쩍 자랐다면 성조숙증을 의심할 필요가 있다. 박 원장은 “2차성징은 성장판이 닫히는 시점을 알려주는 타이머”라며 “갑자기 부쩍 성장하는 시기와 그렇지 않은 시기를 잘 구분해 6개월에 한 번씩 아이 키를 측정하는 것이 좋다”고 권장했다.

<정심교 기자 jeong.simky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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