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노동당 참패 전철 밟을라” … 당내 각성 촉구한 새정치연합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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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1호 08면

새정치민주연합의 싱크탱크인 민주정책연구원이 최근 영국 노동당의 총선 참패에 대한 분석을 담은 보고서를 내놨다. 1997년 블레어 전 총리의 ‘제3의 길’을 내세워 집권한 영국 노동당이 수권 능력 없는 구태 정당, 선의는 있지만 무능한 정당으로 퇴보하는 바람에 총선에서 참패했다는 것이 분석의 골자다. 새정치연합이 노동당과 마찬가지로 보수 정권에 맞서는 개혁 성향의 정당인 데다 최근 재·보선에서 패배했다는 점에서 이는 결국 노동당 사례를 통해 당내 각성을 촉구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연구원이 지난 8일 공개한 ‘2015년 영국 총선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영국 보수당에는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기업, 창업 기업 등 재계 전체의 지지가 쇄도했지만, 노동당은 중소기업의 정당임을 선언하면서 반쪽짜리 정당을 자처했다”고 지적했다. 치열한 국제 경쟁 속에서 수권 정당으로서 경제운용 능력에 대한 신뢰를 복원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선거 패배의 원인에 대해 “노동당은 현실을 부정하면서 자기 혁신을 거부하는 ‘망상의 정치(politics of delusion)’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보수당 지지자를 설득할 필요는 없다’‘기업의 지지를 얻는 것은 구태다’라는 등의 망상이 당의 위기를 불러왔다는 뜻이다. 좋은 집에 살면서 자녀를 고급 사립학교에 보내는 이른바 영국판 ‘강남 좌파’가 노동당 내에서 득세한 것도 다수의 유권자들로부터 외면당하는 결과를 낳았다고 보고서는 분석했다.

지난달 4일 치러진 영국 총선에서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이끄는 보수당은 총 의석 650석 중 과반인 330석을 차지해 232석을 얻는 데 그친 노동당에 압승을 거뒀다. 노동당으로선 1987년 총선 이후 최악의 패배였다. 밀리밴드는 총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당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이는 내년 총선을 앞둔 새정치연합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보고서를 작성한 이진복 민주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봉하마을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6주기 추도식에 참석하는 등 통합 행보를 하고 있는데 반해, 새정치연합은 새누리당 지지자들을 여전히 ‘보수 꼴통’ 세력으로 배척하고 있다”며 “새정치연합이 내년 총선에서 새누리당 지지자들을 빼앗아 오지 않고서는 선거에서 이기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노동당이 당의 전통적 기반이자 ‘영국의 호남’으로 불리는 스코틀랜드에서 1석을 얻는 대참패를 당한 것도 호남을 기반으로 하는 새정치연합이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새정치연합은 지난 4·29 재·보선에서 텃밭인 광주 서구을을 무소속 천정배 후보에게 뺏겼다. 이 연구위원은 “내년 총선에서 천정배 의원을 중심으로 새로운 정치세력이 등장하면 새정치연합은 호남에서 재·보선 때보다 더 큰 참패를 당할 수 있다”며 “여기에 수도권마저 새누리당에 내주게 되면 노동당과 같은 길을 걷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연구위원은 당의 혁신 방향과 관련해 “중도는 좌우의 경계를 넘는 현대적 의미의 진보”라며 “국민통합을 추구하는 등 ‘제3의 길’, 즉 중도 원칙을 복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새정치연합도 좋은 일자리를 창출하고, 국회 대치 상태를 해결하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는 등 수권 정당으로서 능력을 입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천권필 기자 fee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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