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신발과 겨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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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소련의 전체 트럭중 3분의1이 고장으로 멈춰 서있고, 여름신발을 가까스로 사 신을수 있게 되면 이미 겨울이 다가와 있다.』
소련의 경제현실에 대해 이만큼 솔직하고 권위있는 발언은 없을 것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소련공산당서기장「콘스탄틴·체르넨코」가 최근 당중앙위 정치국 회의에서 연설한 내용이다.
그가 통탄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저질노동력에 따른 노동생산성의 낙후, 소비재부족에다 노동기강의 해이, 무사안일 풍조가 소련의 경제체제를 심각한 위기로 몰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련 노동자의 「게으름」은 요즘 생겨난게 아니다.
83년에 소련은 2대고질병인 「근무지 이탈풍조」와 「알콜중독」을 방지하는 법령까지 마련했다.
그 규정중엔 『3시간이상 근무지를 무단 이탈할 경우 l일 결근으로 처리, 연간 공휴일에서 공제한다』는 것도 있다.
그렇다고 심하게 불평하는 사람은 없다. 「스탈린」시대에는 일터에 늦게 나가면 곧 바로 징역형에이었기 때문이다.
「체르넨코」이전의 집권자였던 「안드로포프」는 「노동자의 태만」을 소련 경제침체의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보고 공장을 쫓아다니면서 「질서와 규율」운동을 벌였다.
그때 모스크바시내의 식당·영화관·이발관에선 기이한 검문도 있었다. 손님 하나 하나를 붙잡고 근무시간중 직장이탈 여부를 가리는 검문이었다.
특히 프라우다지는 작년에 『작업규율을 어기는 가장 큰 문제는 일터에 술을 마시고 오거나 일터에서 술을 마시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거기에 범죄의 만연도 있다. 지난 8월말 소련내상겸 전KGB총책「비탈리·페도르추크」는 소련경제계는 횡령·독직으로 광범하게 오염돼 었다고 통탄했다.
그는 북부 코카서스지방의 한 육가공공장 간부들은 거의가 「좀도둑」이라고 지적하고 그런 현상이 일반화됐다고 했다.
그런 현상들은 사회주의체제의 문제를 노출케 한다.
『스탈린 조크』란 책에는 이런대목도 나온다.
바르샤바대 학 생이 이데올로기시험에서 『자본주의는 어떤 발전단계에 있는가?』란 질문을 받고『절벽끝에 서있다』고 답했다. 그때 선생이 『그럼 사회주의는?』하고 묻자 학생은 『자본주의 다음단계다』고 답했다.
절벽아래 떨어져 있는 사회주의체제의 처지가 바로 「체르넨코」의 비명이 되어 흘러 나왔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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