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세 노의사 월 500만원 받고 의사명의 빌려줘…사무장병원 백태 적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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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지방경찰청은 지난해 관내의 한 한방병원을 수사했다. 의사 명의로 개설된 병원이긴 하지만 뭔가 미심쩍은 구석이 많았다. 수사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이 병원은 ‘사무장 병원’이었다. 비의료인 A씨는 의료기관을 개설할 수 없는 신분이지만 의사 B씨와 짜고 그의 명의로 이 병원을 개설했다. 이를 통해 A씨가 불법으로 편취한 민영보험금은 5억3000만원, 건강보험 요양급여는 10억1000만원이었다. 이 뿐이 아니었다. A씨는 상습범이었다. 이에 앞서 똑같은 건물에 다른 의사인 C씨의 명의로 병원을 먼저 열어 이미 민영보험금 2억8000만원과 건강보험 요양급여 5억9000만원을 챙긴 상태였다.

금융감독원은 비의료인이 의사 명의를 빌려 불법으로 개설한 사무장 병원 57곳에 대한 기획조사를 벌여 10일 그 결과를 공개했다. 금감원에 따르면 이 중에는 불법으로 개설됐을 뿐 아니라 동일 주소지에 2개 이상의 병원을 동시에 개설한 경우도 많았다. 한 의사의 명의로 복수의 병원을 개설하는 병원 이중개설도 불법이다. 이들은 가짜 환자가 한 병원에 오래 입원하면 의심을 받게 된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2개 이상의 병원을 개설해 돌아가면서 입원시켰다. 이들은 이 수법으로 거액의 보험금과 건강보험 요양급여를 받아 챙겼다. 이중개설 병원은 한 건물 내에 여러 개의 이름을 달고 개설되는 경우가 많았다.

환자 진료가 어려운 고령의사가 돈을 받고 명의를 대여해준 경우도 적지 않았다. 81세의 한 의사는 월 500만원을 받고 비의료인에게 명의를 대여해줬다. 최근에는 사무장병원이 요양병원 형태로 개설되는 경우가 늘었다. 요양병원은 환자의 장기입원이 가능하기 때문에 보험사기에 악용되기 쉽다는 게 금감원의 설명이다. 병원 개설이 가능한 의료법인이나 의료생협의 명의를 대여하거나 허위로 이들 기관을 설립한 뒤 그 산하에 병원을 개설하는 수법도 많이 사용됐다.

불법 사무장병원은 단기간내 고수익을 얻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무면허 불법 의료행위와 허위입원을 통한 건강보험 및 민영보험금 부당편취 행태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금감원은 경고했다. 금감원은 보험사기 혐의 사무장병원에 대해 수사기관에 통보해 처벌받도록 하고, 그 동안 편취한 건강보험 요양급여 전액을 환수토록 할 계획이다. 명의를 빌려준 의료인은 최대 1년간 자격정지된다.

박진석기자 kaila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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