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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세요. ‘다음’이 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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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이영희 기자 중앙일보 기자
이영희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2015년은 유난히 빨리 지나가는 느낌이다. 벌써 한 해의 절반 가까이 흘렀다는 사실만도 충격인데, 메르스 여파로 세상은 뒤숭숭. 주말엔 살짝 감기 기운이 있어 자택 격리를 자처하며 뭔가 힘이 날 만한 게 없을까 열심히 인터넷을 서핑했다. 그러다 보게 된 두 배우의 졸업식 축사.

 먼저 크게 화제가 된 로버트 드니로의 뉴욕대 티시 예술대학 졸업식 축사다. 대배우답게 충격적인 도입부로 마음을 훅 빼앗는다. “졸업생 여러분은 해냈습니다. 그리고 망했습니다(Graduates, you made it. And, you’re fucked).” 의대나 경영대 졸업생은 쉽게 직업을 구할지 모르나 예술을 전공한 당신들을 기다리고 있는 건 겹겹이 닫힌 ‘거절’이라는 문일 가능성이 높다. 자신 역시 여전히 거절을 당하고 있다는 고백. “마틴 루서 킹 목사를 다룬 ‘셀마’ 시나리오를 읽고 나를 (주인공으로) 염두에 두고 썼다는 확신이 들어 감독에게 이야기했죠. 그런데 감독의 생각은 다르더군요.”

 하지만 선택받지 못했다고 해서 스스로를 탓하거나 한없이 좌절해 있지 말라는 것, 열릴 때까지 끊임없이 새로운 문을 두드려야 한다는 것. 험한 길을 선택한 후배들에게 건네는 선배의 따뜻하고 유쾌한 조언이다.

 영화 ‘레옹’의 소녀 내털리 포트먼의 하버드대 졸업식 축사도 감동적이었다. ‘스타워즈 에피소드1’에 출연한 직후인 1999년 하버드에 입학한 그는 유명세로 합격증을 손에 넣었을 뿐 자신에겐 하버드에 올 만한 지적인 능력이 없다는 불안에 시달렸다고 고백한다. ‘멍청한 여배우’가 아니라는 걸 자신과 주변에 증명하기 위해 신경생물학과 고급 히브리 문학 같은 어려운 수업을 골라 들으며 끙끙댔다. 하지만 그 시간을 거친 뒤 “스스로를 지나치게 의심하지 말자”고 다짐하게 됐다.

 “‘블랙스완’을 찍기 전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어요. 발레 동작을 소화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았다면 절대 주인공을 맡지 않았을 거예요. 하지만 한계를 모르기 때문에 해낼 수 있는 일들이 있더라고요.” 그는 이 영화로 2011년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는다.

 두 사람 모두 스스로를 믿고 벽을 넘어서라고 조언한다. 나를 주저앉게 만드는 세상의 벽,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의심과 불안이라는 벽 모두…. 사방이 벽으로 막힌 것 같은 6월이다. 이 문을 지나면 조금쯤 밝은 소식이 기다리고 있기를. 로버트 드니로님의 조언에 기대볼밖에. “항상 기억하세요. ‘다음(Next)’이란 말을.”

이영희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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