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송전으로 가는 삼성·엘리엇 대결

중앙일보

입력

삼성그룹과 미국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 간의 분쟁이 장기전 양상으로 흐르고 있다. 애초 주가 차익을 실현한 뒤 ‘먹튀’할 것이란 예상과 달리 엘리엇이 소송 카드를 빼 들었기 때문이다.

엘리엇은 9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이 삼성물산 주주의 이익에 반하며 불법적이라고 믿는데 변함없다”며 서울중앙지법에 삼성물산과 이사진을 상대로 주주총회 결의금지 가처분 소송을 제기했다고 밝혔다.

삼성물산은 다음달 17일 임시주총을 열어 제일모직과의 합병을 결의할 예정이었는데 이를 법원이 막아달라는 주장이다.

그동안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엘리엇의 향후 행보로 세 가지 시나리오를 예상했다. 우선 엘리엇이 삼성물산 임시주주총회를 위한 주주확정일(6월11일) 이전까지만 주식을 보유하다 차익을 실현하고 파는 시나리오다. 이른바 ‘먹튀’다.

또 엘리엇이 삼성물산의 지분을 추가 매입해 현재 7.12%에서 10% 이상으로 늘리는 방법도 제기됐다. 이럴 경우 엘리엇은 회사 해산청구권 등을 갖게 되며 경영권 참여에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게 된다.

그러나 이번 소송 제기로 첫 번째 시나리오의 가능성은 사라졌다. 두 번째도 경영참여 목적으로 5% 이상 지분 보유한 투자자는 자본시장법상 냉각규정에 따라 주주명부 폐쇄일까지 추가로 지분을 확보할 수 없어 불가능하다.

이에 따라 양측 갈등은 세 번째 시나리오로 굳어지고 있다. 창으로 무장한 엘리엇이 무차별 공격을 해대면 삼성은 사용할 수 있는 모든 방패를 동원해 막아내는 장기전이다. 그동안 행태를 볼 때 엘리엇은 이번 소송이 기각되더라도 물러서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임시주총에서 표 대결을 벌인 뒤 여기서도 지면 해외에서 다시 소송을 제기할 것이란 분석이다. 창업자 폴 엘리어트 싱어(71)는 변호사 출신으로 이런 장기전에 익숙하다.

이미 2000년대 아르헨티나 국채에 투자한 뒤 아르헨티나가 디폴트(채무 불이행)를 선언하자 소송을 제기했다. 결국 2012년 승소해 무려 16억달러를 상환 받았고 아르헨티나는 재정위기에 빠졌다.

강현철 NH투자증권 투자전략부장은 “엘리엇은 이런 소송에서 승소율이 60%를 넘어선다”며 “올해 또는 내년 초까지 지배구조를 개편해야 하는 삼성 입장에서는 이런 장기전을 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엘리엇이 요구하고 있는 중간배당, 합병비율 조정 등을 삼성이 받아들일 가능성도 있다는 설명이다.

외국인투자가의 불만이 큰 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비율(1대0.35)이다. 삼성은 국내법에 따라 주가로 비율을 산정했다. 하지만 자산기준으로 본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삼성물산의 자산이 29조5000억원으로 제일모직의 3배가 넘기 때문이다.

외국에선 합병 때 주가뿐 아니라 자산가치도 반영하도록 하고 있는 사례가 많다. 회사측이 비용을 적게 들이고 합병을 하기 위해 주가를 조종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엘리엇이 해외에서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이 큰 이유다. 국내법 규정을 문제 삼아 투자자·국가간 소송(ISD)을 활용할 수도 있다.

일부 소액주주 움직임도 삼성엔 부담이다. 엘리엇이 합병 반대를 공식화한 다음 날인 5일 인터넷에 ‘삼성물산 소액주주 연대’ 카페가 개설됐다. 이 카페의 회원 수는 1000명을 넘어섰다. 카페 운영자는 공지 글에서 주권을 엘리엇에 위임하자고 제안했다.

채이배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연구원은 “과거와 달리 소액주주가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해 상당히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며 “외국계 자본과 국내 기업이 대결구도 벌일 때도 애국심에 호소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어떤 식으로든 삼성물산 주주를 달래기 위한 ‘당근’ 조치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김창규ㆍ정선언 기자 teente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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