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의 눈 응시하는 순간 욕망은 사랑으로 승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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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0호 22면

일러스트 김옥

“그건 포르노 행위였어요. 난 해보고 싶은 게 있었어요. 누구나 상상하는 것이 있잖아요.”

백영옥의 심야극장 <4> 포르노그래픽 어페어

카메라 앞에 앉아 여자가 인터뷰를 한다. 여자는 포르노 잡지에 파트너를 구한다는 광고를 냈다. 광고를 본 한 남자가 여자에게 연락했다. 나이도, 직업도, 이름도, 어떤 정보 없이 그들은 서로의 신체적 결함에 대해서만 얘기했다. 몸에 관해서 최대한 솔직해지기 위해서였다.

그들은 호텔 근처 카페에서 처음 만났다. 여자는 커피를, 남자는 코냑을 마셨고 곧장 예약해 놓은 호텔로 갔다. 호텔의 좁은 계단을 오르는 남자와 여자의 얼굴이 긴장감으로 조여든다.

하지만 뜻밖에 카메라는 호텔 방 안을 전혀 비춰주지 않는다. 이쯤 되면 실망할 사람들이 제법 있을 것이다. 관음증을 자극하는 듯한 붉은색 카펫이 깔린 빈 복도를 보며 우리는 그저 침대 안 풍경을 상상할 수밖에 없다.
어떻게 잤을까? 체위는? 횟수는? 콘돔을 사용했을까? 과연 잠자리에 어떤 도구들을 활용했을까? 그들은 한낮의 정사를 ‘포르노적’으로 나눴을 것이다.

하지만 남자와 여자 둘 다, 행위에 대한 그 어떤 구체적인 설명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두 사람은 한결같이 “섹스는 좋았다”라고 대답한다. 파리의 한 지하철 역 앞에서 헤어진 그들은 다음주에 다시 만날 약속을 한다. 이런저런 의문이 증폭될 즈음 여자가 카메라 앞에서 낮은 목소리로 회상한다. “어쨌든 그가 꺼낸 말 때문에 모든 게 시작됐죠. 그땐 깨닫지 못했지만.”

포르노가 사랑이 될 때
정사 후, 남자는 여자에게 좋은 곳을 알고 있으니 저녁을 먹자고 말한다. 이미 최종 목표에 도달한 남자와 여자는 유혹이나 섹스에 대한 부담 없이 편하게 얘기한다.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사람들처럼. 몇 번의 관계가 이어지고 조금 더 친숙해진 이들은 이전까지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모험을 결행하기로 한다.

“만약에…사랑의 행위를 해보는 건 어때요? 말하자면 정상적인 행위 같은 거요.”

맞다. 이들은 ‘정상위’를 ‘처음으로’ 시도해보기로 한 것이다.

정상위를 시도한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 서로의 눈을 바라보는 상태로 섹스하게 된다는 뜻이다. 놀랍게도 이들이 정상위를 결정하는 순간, 빈 복도만 비추던 카메라는 ‘호텔 안’으로 진입한다.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처럼 외로워 보이는 호텔 방안을 잠시 비추다가, 따사로운 햇볕이 가득한 침대를 비추더니, 기어이 이들에게 일어나는 일을 ‘사실적으로’ 증언하기 시작한다.

놀랍게도 그 장면은 조금도 외설스럽지 않다. 한 쌍의 기계 체조 선수들처럼 제 아무리 체위를 바꾸며 ‘포르노적’으로 섹스했다고 해도, 서로의 눈을 바라보는 아득한 시간을 체험한 적이 그들에겐 없었을 것이다. 눈을 맞춰 키스하고,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따뜻하게 핥아준 적도 역시 없었을 것이다.

이들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정을 느낀다. 너무 많이 흥분한 남자가 평소보다 빨리 사랑을 끝내버리는데도, 여자는 좋았다고 말한다. 침대에서 생각보다 빨리 끝내버리는 것이 세상 남자들 모두의 악몽이라면, 과연 그녀의 말은 진심일까? 아니면 (비로소 바라보기 시작한) 남자를 위로하기 위한 거짓말일까?

정상위를 시도하면서 그들은 처음으로 함께 절정에 이르렀다. 그녀는 영화 속 섹스가 천국 아니면 지옥이라고 말하다가, 현실적인 모든 섹스는 그저 ‘중간지역’일 뿐이라고 잘라 말한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모든 게 “빈틈없이 완벽했다”라고 카메라를 바라보며 얘기한다. 에로스는 서로의 눈을 ‘응시’하던 바로 그 순간 증폭되었다. 포르노가 사랑이 되는 순간이다.

이해와 오해 사이
벨기에 출신인 프레데릭 폰테인 감독의 프랑스 영화 ‘포르노그래픽 어페어’는 남자와 여자의 관계 변화를 회상 형식의 인터뷰로 이어간다. 그리고 오직 ‘그’와 ‘그녀’로 대변되던 익명의 포르노적 관계를 벗어나자마자 이들에게 일어나는 심리적 균열을 살핀다. 이들은 이제 몸이 아니라 감정을 알고 싶어한다. 그는 나를 사랑하는가! 그녀는 내 사랑을 원하는가! 어떤 정보도 없는 우리는 과연 행복해질 수 있는가!

여자에게 사랑을 고백받은 남자는 한 번 생각해보겠다고 말했지만, ‘자신도 그녀를 사랑한다’고 확신한다. 여자 역시 자신의 본능을 따라가는 게 옳다고 느낀다.

하지만 카페에서 ‘다시’ 만나 서로의 눈을 ‘응시’하던 그 순간, 남자는 그녀가 자신을 원치 않는다는 걸 눈치챘다고 고백한다. 남자는 사랑한다는 말 대신, 우린 ‘잘 안될 것’이라고 말한다. 남자가 거절하면 매달릴 결심까지 했던 여자는 그 순간, 남자가 옳다는 걸 깨달았다고 증언한다. 그들은 마지막으로 호텔로 향하는데, 만약 자신들이 서로를 오해한 것이었다면 그것을 깨닫게 해줄 어떤 일이라도 일어났을 거라고 주장한다.

서로의 눈을 응시한 순간 증폭됐던 에로스는, 서로를 다시 응시한 순간 오해로 폭발했다. 이들은 결국 ‘사랑함에도 불구하고’ 헤어진다. 남자와 헤어진 후, 여자는 딱 한 번 남자를 우연히 만나는데 그를 그저 멀리서 바라만 본다. 오해가 이해가 되는 순간을 우린 사랑이라 믿지만, 어쩌면 사랑은 이해가 오해가 되는, 조금 더 빈번한 순간에 끝장나기도 하는 것이다.

백영옥 광고쟁이, 서점직원, 기자를 거쳐 지금은 작가. 소설 『스타일』『다이어트의 여왕』 , 산문집『마놀로 블라닉 신고 산책하기』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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