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나를 흔든 시 한 줄

송승환 PMC프로덕션 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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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두 개의 바위 틈을 지나 청춘을 찾은 뱀과 같이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그저 낡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한탄할 무엇이 있어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 박인환(1926~56) ‘목마와 숙녀’ 중에서

시는 내가 읽을 때도 좋지만 누가 잘 읽어줄 때 더욱 좋다. 고등학교 때 내 방엔 낡은 전축이 있었고, LP판에서 박인희씨의 낭송으로 이 시를 들었다. 시의 의미는 잘 몰라도 31세에 요절한 시인의 감성적 절규가 박인희씨의 낭랑한 목소리에 얹혀서 마음에 들어왔다. 허무한 정서가 매력적인 시이면서 동시에 음악으로 내게 다가왔다. 까까머리 소년의 말랑말랑한 감성을 자극했다.

 이후 1980년대 초반, 20대 중반이 된 나는 라디오 ‘밤을 잊은 그대에게’ 심야방송 DJ를 하면서 이 시를 또 읽었다. ‘송승환의 모노드라마’라는 코너를 통해 시와 에세이·소설의 구절을 낭송했는데 스튜디오의 불을 끄고 작은 스탠드만 켜놓은 채 한창 유행하던 폴 모리아의 연주 음악을 배경으로 글들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요즘도 나는 황학동의 낡은 LP판 가게를 뒤지고 그 시절 즐겨 듣던 포크 음악을 듣는다. 거기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내 순수했던 시절의 감성이 들어 있다. 그것이 오늘 뮤지컬과 연극을 만들고 무대에 올리는 내 창작의 원천이라고도 생각한다. 송승환 PMC프로덕션 회장, 성신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