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자금 필요한 사우디 “감산 없다” … 원유전쟁 시즌2 임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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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이번에도 원유 감산은 없다. 톰슨로이터는 지난달 말(현지시간) 걸프지역 고위 관계자의 말을 빌려 “5일 열릴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의에서 원유 감산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보도했다.

 그 바람에 1일 두바이산 원유 가격은 배럴당 2달러 가까이 떨어졌다. 59.5달러 선에서 사고팔렸다. 올 들어 최고치인 지난달 6일(66.9달러)보다 11% 정도 낮은 가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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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톰슨로이터는 “미국 셰일 원유 채굴 건수가 줄어들고 있는데도 원유 공급량이 줄지 않고 있다”며 “OPEC이 5일 회의에서도 감산하지 않으면 공급 과잉은 당분간 심해질 수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실제 요즘의 공급 과잉은 2009년 이후 가장 심하다.

 에너지·금속 정보회사인 플래츠(Platts)의 데이브 에른스버거 이사는 최근 본지와 인터뷰에서 “하루 200만 배럴 정도가 남아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OPEC 내 감산 강경파의 영향력은 줄어들고 있다.

 블룸버그 통신은 1일 전문가의 말을 빌려 “이란·베네수엘라가 알리 알나이미 사우디아리비아 석유장관을 압박하며 감산을 요구할 것”이라며 “하지만 러시아 등 비 OPEC 산유국이 감산에 시큰둥해 이란 등의 압박이 효과적이지 않을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요즘 러시아는 외환위기 벼랑 끝에서 벗어나고 있다. 국제유가 하락과 서방 경제제재 탓에 루블화 값이 추락했다. 올해 초 미국 달러당 70루블까지 떨어졌지만, 요즘엔 50루블 대에서 평온한 모습이다. 올해 초만큼 러시아가 절박하게 원유가격 상승을 바라지 않고 있다.

 결국 세계 경제가 빠르게 회복하면서 원유 수요가 가파르게 늘어나지 않는 한 ‘원유전쟁 시즌2’가 시작될 가능성이 크다. 감산 가능성은 크지 않은데 생산은 거의 35년 최고 수준이라서다. 뉴욕타임스(NYT)는 “사우디가 요즘 하루 1030만 배럴 정도를 생산하고 있다”며 “이는 1980년 이후 가장 많은 생산량”이라고 전했다. 알나이미 석유장관의 전략 탓이다. 알나이미는 지난해 11월27일 원유전쟁을 선언하며 “80년대 후반 OPEC이 유가 하락을 막기 위해 원유 생산량을 줄였다. 그 결과가 무엇이었는지 아는가. 가격은 계속 떨어졌고 우리(OPEC)의 시장 점유율마저 줄었다. 미국 알래스카산 원유 등이 우리 몫을 차지했다. 우리는 생산량을 유지해 시장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가격 하락을 감수하는 대신 OPEC의 시장 점유율을 유지하겠다는 전략이다. 그런데 5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릴 OPEC회의에서 알나이미가 한술 더 떠 생산쿼터를 더 늘릴 전망이 제기됐다. 세계 2위 투자은행인 모건스탠리는 1일 투자자에게 띄운 편지에서 “OPEC이 하루 생산쿼터를 현재 3000만 배럴에서 더 늘릴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근거는 무엇일까. 모건스탠리는 “사우디가 예멘과 이라크에서 군사작전을 펼치고 있어 많은 돈이 필요하다”고 했다. 석유를 팔아 대테러 전쟁을 벌여야 한다는 얘기다. 이 예상대로라면 원유전쟁 시즌2는 더욱 치열할 수밖에 없다. 이미 OPEC은 스스로 정한 생산쿼터(하루 3000만 배럴)를 어기고 3160만 배럴 정도를 시장에 쏟아내놓고 있다.

 블룸버그는 “공급과잉 와중에 생산쿼터 늘리기는 미국 셰일 업계를 고사시켜버리겠다는 의도”라고 풀이했다. 셰일오일 생산원가는 사우디보다 두 배 이상 높다. 하지만 원유전쟁 시즌1에서 셰일업계는 놀라운 생존력을 보여줬다. OPEC 공세가 더욱 거세져도 망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얘기다. 골드먼삭스 등이 올 하반기 원유 가격이 45달러 정도까지 떨어질 것으로 보는 이유다.

강남규 기자 dism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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