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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달러 덫에 빠진 중국 경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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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요즘 중국 경제지에 심심찮게 '합자함정(合資陷穽)'이란 말이 등장한다. 그동안 외국 기업과의 합자를 장려했는데 이제 와 돌아보니 득보다 실이 많았다는 뜻이다. 갑자기 무슨 소릴까. 개혁개방 이후 30년 가까이 '합자=외자 유치=선진 기술 확보'라는 등식을 의심치 않았던 중국 아닌가. 속사정은 이렇다.

중국 상무부가 올 초 '2005 중국 내 다국적기업'이라는 보고서를 내놨다. 지난 수년 동안 다국적기업이 중국에서 차지해온 위치를 정밀 분석한 보고서다. 여기엔 지난해 중국 총수출(5936억 달러)의 절반은 다국적기업들이 했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세수의 20%는 다국적기업이 냈다는 분석 자료도 있다. 덕분에 중국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매년 8~10%대를 오르내렸다. 여기까진 좋았다. 한데 국민총소득(GNI)을 분석하면서 중국인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GNI란 국내 거주 외국인들이 번 돈을 뺀 순수 중국인들의 수입을 말한다. 그런데 증가율을 봤더니 GDP 증가율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그동안 외자 기업만 배불린 게 아니냐는 자조(自嘲)가 터져나왔다.

산업기술 발전도 신통치 않았다. 중국산업계 조사에 따르면 자동차산업은 합자 이후 오히려 독자적인 기술력이 더 떨어졌다는 평가다. DVD는 핵심 57개 기술 중 9개만 중국이 보유하고 있다. 첨단 제품 축에도 못 끼는 컬러 텔레비전도 핵심 기술자립도가 63%에 불과했다. 종합해 보니 첨단 정보기술(IT)의 80%는 아직도 로열티를 내는 형편이었다. 이야기가 리&펑(Li & Fung)의 '중국 경제 3달러 론(論)'으로 옮겨가면 중국 경제는 더욱 초라해진다. 아시아 최대 방직품 무역상인 그는 "중국 경제가 앞으로 3달러 함정을 빠져나오지 못하면 희망이 없다"고 단언한다. 중국 제품의 공장 출하 가격이 1달러라면, 수출해서 해외에서 팔리는 가격은 4달러라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차액 3달러(부가가치)는 대부분 외국 기업 몫이다.

탄샤오(談蕭)라는 경제학자는 2년 전 그의 저서 '해외진출 발전전략(走出去發展戰略)'에서 "중국 기업들을 해외로 내보내 피말리는 경쟁을 하도록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중국산 다국적 선진 기업은 없다"고 주장했다.

중국 정부는 극단적 대책을 들고 나왔다. 지난 2월 상무부가 만든 '해외 투자회사 설립허가 규정'이다. 기술력 있는 해외 기업을 송두리째 사서 기술을 확보하라고 기업을 독려하는 내용이다. 67개국별로 인수 대상 기업 목록까지 제시했을 정도다. 특히 거리가 가까운 한국의 첨단 기업들은 사냥 0순위다. 지난해 중국 기업의 쌍용자동차와 하이디스(하이닉스 LCD 사업부문) 인수는 그냥 이뤄진 게 아니라는 얘기다. 올해는 이 같은 기업사냥이 더 거세질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이를 두고만 볼 것인가.

지난해 말 중국 최대 PC 메이커인 레노보가 미국 IBM의 PC 부문을 인수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때 미국 정부는 곧바로 엑손 플로리오법을 들고 나왔다. 미국 기업이 외국에 넘어갈 경우 외국인투자위원회(CFIUS)가 자국 안보(이익)에 문제가 없는지 조사한 뒤 가부를 결정토록 하는 법이다. CFIUS는 4개월 동안 중국으로의 첨단 기술 유출 여부를 철저히 조사한 뒤 매각을 승인했다.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자랑하는 미국이 PC 회사 하나 중국에 판다고 그 난리다. 우리는 어떤가. 스스로 돌아보고 대책을 마련할 때다.

최형규 국제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