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화 한 켤레 3만원 '염천교 브랜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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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80년대까지는 정말 좋았지. 한 점포에서 하루 1천켤레 파는 것은 일도 아니었거든. 제주도에서까지 구두 사러 찾아오는 상인들이 있었어. 그런데 지금은 하루 3백켤레를 팔기도 힘들어."

서울역 뒤 염천교 구두상가에서 25년째 점포를 운영하고 있는 박문수(53.승보제화)사장의 회고다.

염천교 일대는 전성기 때를 생각하면 초라하지만 지금도 1백여개의 점포가 밀집해 있는 국내의 손꼽히는 구두 전문상가다. 이 지역에 구두점포가 들어서기 시작한 것은 1925년 서울역이 생기면서부터다.

피혁 등 화물을 보관하던 창고들이 있던 자리에 잡화상과 함께 구두 수선점이 하나 둘씩 생겨났다. 이후 한국전쟁 때 염천교 점포들이 미군의 전투화(워커)를 개조해 만든 신사화가 '히트상품'이 되면서 크게 번창했다.

특히 염천교 구두는 싼 가격을 무기로 명동의 고급 제화점들과 쌍벽을 이뤘다. 서울역과 남대문 시장을 낀 지리적 이점도 전국의 도매상들이 염천교 상가를 찾은 이유였다.

그러나 염천교 구두는 90년대 들어 값싼 중국산이 밀려 들어오면서 퇴보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염천교 구두 가운데 20% 가량이 중국산일 정도다.

염천교의 남성용 정장구두도 한 켤레에 3만~5만원선으로 비교적 싼 편이지만 중국산 제품은 1만5천~3만원으로 거의 절반 값이다.

하지만 염천교 상인들의 품질에 대한 자부심은 아직도 대단하다. 박사장은 "백화점에서 고가에 팔리는 제품 중 상당수가 염천교에서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으로 제작된 것"이라면서 "제품의 질로만 따진다면 중국산이 염천교 구두를 따라오지 못할 정도"라고 말했다.

염천교 구두상가의 영업시간은 오전 7시에서 오후 7시까지며 일요일은 대부분 쉰다. 지방상인들이 찾는 오전시간에는 주로 도매를, 오후에는 소매영업을 한다.

조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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