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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생들 울린 ‘신양 할아버지’의 기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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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국희 기자 중앙일보 기자
2010년 9월 30일 서울대 재학생과 졸업생 200여 명이 신양문화재단 정석규 명예이사장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는 행사를 열었다. 이날 학생들은 직접 그린 초상화와 감사의 편지를 전달했다. [사진 서울대]
손국희
사회부문 기자

“돈은 분뇨와 같아. 그저 한 곳에 모아두면 악취를 풍기지만, 밭에다 고루 뿌리면 풍성한 수확을 거두게 하잖아.”

 지난 21일 향년 86세로 세상을 떠난 신양문화재단 정석규(서울대 화학공학과 48학번) 명예이사장이 생전에 입버릇처럼 했던 말이다. 정 이사장에게 재물은 거름이었다. 그는 1987년 1000만원을 시작으로 올해 초까지 150여 차례에 걸쳐 전 재산 451억원을 모교에 기부했다. 인문대·사회대·공대 등 세 단과대에 그의 아호를 딴 신양학술정보관이 건립됐다. 서울대생 820명이 장학금 25억6500만원을 지원받았다.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은 성장의 밑거름이었다. 학생들은 정 이사장을 ‘신양 할아버지’라고 부르며 따랐다.

 정 이사장은 뛰어난 경영가였다. 태성고무화학의 창업주다. 불모지였던 고무 산업에 투신해 공업용 특수 고무를 국내 최초로 국산화하는 데 성공했다. 고인의 생전 모습은 거부(巨富)와는 거리가 멀었다. 20년 넘게 즐겨 입은 낡은 양복과 굽이 뜯어진 빛 바랜 구두가 트레이드 마크였다. 평생 머물렀던 거처는 허름한 오피스텔이었다. 사무실엔 값비싼 가구 대신 낡은 소파와 책들이 가득했다.

 김도연 전 과학기술부 장관이 고인과의 추억을 회상했다. “처음 정 이사장과 밥을 먹는데 칼국숫집으로 데려갔어요. 한 그릇에 4000원 하는 허름한 곳이었죠. 중국집에 가도 짜장면이나 우동만 시키고 남은 음식은 알뜰히 싸가더군요···.” 실제 정 이사장은 음식점을 갈 때면 늘 작은 플라스틱 통을 들고 다녔다. 식사를 마치고 나면 남은 음식을 플라스틱 통에 꾹꾹 눌러 담았다. 처음엔 의아해하던 종업원들은 정 이사장의 면모를 알게 된 뒤론 말하지 않아도 남은 음식을 정성스레 포장해줬다.

 정 이사장은 17년간 후두암에 시달렸다. 말년엔 한마디를 떼기 힘겨울 정도였다. 그럼에도 자신의 지원을 받아 졸업한 학생들의 근황을 들을 때면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눈물을 글썽였다고 한다.

 늘 비우는 삶을 살았던 정 이사장의 빈소는 추모 학생들로 가득했다. 서울대 캠퍼스에 따로 마련된 빈소 세 곳에도 학생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장학금을 지원받았던 한 공대생(4학년)은 “희망이 없다고 낙담해 쓰러지려는 내 앞에 계단을 놓아주셨던 분”이라며 “그분의 뜻을 따라 베푸는 삶을 살겠다”고 다짐했다. 그를 잊지 못하는 장학생들은 벌써부터 정기적인 기부 계획을 세우고 있다.

 요즘 세태는 각박해 돈 몇 푼에 사람이 죽고 사는 일이 끊이질 않는다. 정 이사장의 삶이 더욱 빛을 발하는 이유다. 떠나면서 그는 장학금 대신 나눔의 정신을 남겼다.

손국희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