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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고 노무현 대통령 추모식, 분열 아닌 통합의 장 돼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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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지난 23일 봉하마을에서 열린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6주기에서 볼썽 사나운 모습들이 이어졌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일부 참석자로부터 물세례와 욕설·야유를 당했고 김한길·천정배 의원 등 새정치민주연합과 야권의 비노 계열 정치인들도 욕설세례와 함께 물벼락을 당했다. 노 전 대통령의 아들인 건호씨는 인사말에서 김무성 대표를 겨냥해 “권력으로 전직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종북몰이에 열을 올리더니 반성도 없이 불쑥 나타났다”며 노골적으로 비판했다.

 며칠 전 광주 5·18 전야제에 참석한 김 대표가 물병과 야유 세례 속에 쫓기듯 행사장을 떠난 데 이어 노 전 대통령 추모식에서도 여야 정치인들의 봉변이 이어진 것이다. 세상을 떠난 분들의 뜻을 기리며 치유와 통합의 정신을 되새겨야 할 추도 행사가 오히려 갈등과 분열을 부추기는 굿판이 돼버린 데 우울함과 답답함을 금할 수 없다.

 일부 참석자의 돌출적인 행동이긴 하지만 여당 대표로는 노 전 대통령 추모식에 처음 참석한 김무성 대표의 의미 있는 시도를 폭력적 언행으로 방해한 건 통합과 단결을 역설한 ‘노무현 정신’과는 거리가 먼 모습이다. 건호씨의 발언 역시 어려운 발걸음을 한 조문객에게 상주로서 할 언행이었는지 의문이다. 행사 주최 측인 야당 지도부의 소극적 대응도 아쉬웠다. 문재인 대표는 “갈등과 분열을 치유하지 못해 안타깝다”는 말만 했을 뿐 막말을 하는 참석자들을 적극적으로 막지 않았다. 문 대표가 그들에게 자제를 요청하고, 여당과 비노 진영 참석자들을 보듬는 모습을 보였더라면 자리는 훨씬 빛났을 것이다.

  노 전 대통령 추모식은 여당이나 비노 세력에 대한 정치적 불만을 비합리적 방식으로 표출하는 무대가 아니라 ‘노무현 정신’을 국민 모두의 자산으로 승화시키는 장이다. 비극적인 최후를 맞은 노 전 대통령의 기일을 맞아 그 지지자들로선 맺혔던 한을 억누르기 힘들었을 수 있다. 하지만 6년째에 접어든 노 전 대통령의 기일은 특정 정파만이 아니라 온 국민이 노무현 정신을 기리며 민주주의의 발전을 다짐하는 날이 돼야 한다. 문 대표를 비롯한 친노들이 요즘 날만 새면 외치는 ‘통합’의 실현을 위해서라도 일부러 정파를 초월해 다양한 인사들을 초청해 추모식을 용서와 화합의 장으로 만드는 게 고인을 진정으로 위하는 길 아니겠는가.

 여당도 잇단 불상사에도 불구하고 야당과 호남을 끌어안는 노력을 이어가야 한다. 때 되면 광주와 봉하마을을 찾아 예를 갖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에 앞서 진심으로 상대의 아픔을 이해하고, 그런 비극이 재발하지 않도록 제도적 장치를 갖추는 노력을 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의 핵심 대선 공약이었던 대탕평인사가 실현되도록 끊임없이 청와대에 요구하고, 검찰을 비롯한 사정기관들이 정치적 의도로 무리한 표적 수사를 하지 못하게끔 감시를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김 대표와 새누리당이 진심으로 광주 영령들의 넋을 기리고 노무현 정신을 추모하는 길은 바로 대탕평인사와 법치주의의 실현임을 유념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