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쉬 하다가 … 다카타 에어백 휘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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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위기 대처 능력은 기업의 운명을 가른다. 시중에 유통한 제품이 불량품이란 사실을 알았을 때 기업은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소비자에게 솔직하게 밝히고 신속히 대처하면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지만, 안일한 대응은 기업을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지게 한다. 세계 2위 자동차 에어백 제조업체인 일본 다카타가 세계 기업사(企業史)에 새 기록을 남길 전망이다. 영광의 역사가 아닌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치욕의 역사로 기억될 공산이 크다. 미국에서 사상 최대 규모의 제품 리콜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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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 도로교통안전국(NHTSA)은 다카타가 에어백 결함을 인정하고 미국에서 3380만 대의 차량 리콜에 합의했다고 19일(현지시간) 밝혔다. 미국에서 운행되는 차량(약 2억5000만 대) 7대 중 한 대꼴이다. 1980년대 초 한 정신병자가 타이레놀에 청산가리를 넣어 사망사고가 발생하자 회사 측이 캡슐 3100만 개를 회수한 게 이전에 실시한 리콜 중 가장 큰 규모였다.

 세계 시장 점유율 22%로 스웨덴의 오토리브(25%)와 함께 시장을 주도하는 다카타는 혼다·도요타·닛산을 비롯해 GM· BMW·크라이슬러·벤츠 등 11개 글로벌 완성차 업체에 에어백을 납품했다. 다카타가 대규모 리콜에 나선 것은 에어백이 터질 때 금속 파편이 튀면서 운전자가 죽거나 다쳤기 때문이다. 2004년 이래 6명이 사망하고 100여 명이 부상했다. 문제는 회사가 이런 제품 불량에 적극 대응하지 않고 심지어 책임회피까지 하면서 사태가 일파만파 확대됐다는 점이다.

 뉴욕타임스(NYT)는 지난해 11월 “다카타가 2004년에 제품 결함 가능성을 파악하고도 은폐했다”고 보도했다. 같은 달 열린 미 상원 청문회에 출석한 다카타 일본 총책임자는 “2005년 혼다에서 에어백 결함으로 발생한 사고 사진을 보내왔지만 문제가 안 된다고 판단해 조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NYT는 “다카타의 소극적 대응으로 다른 자동차 업체가 에어백의 결함을 수년간 알지 못해 리콜이 늦어졌다”고 지적했다.

 다카타는 제품 결함이 아닌 고온다습한 환경 때문에 발생한 문제라고 버티면서 미국 남부 지역에서만 리콜을 했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북부인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 에어백 사고가 발생하자 소비자들의 비난이 폭발했다. NHTSA는 미국 전역으로 리콜을 확대하라고 요구했고, 지난 2월에는 사고 조사에 적극 응하지 않은 다카타에 매일 1만4000달러의 벌금을 부과했다.

 다카타는 경영상으로도 사면초가에 몰렸다. 막대한 리콜 비용에 미국과 캐나다 등에 걸려 있는 집단 소송 배상금을 감당해야 한다. 에어백산업 조사업체인 밸리언트 마켓 리서치의 스콧 업햄 대표는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리콜로 다카타와 완성차 업체가 부담해야 할 비용은 40억~50억 달러로 추산된다”고 말했다. 이미 다카타의 주가는 최고치에 비해 3분의 1 토막 났다. 미국의 기업위기 컨설팅회사인 번스타인의 조너선 번스타인 회장은 “ 사고의 원인을 즉각 설명하지 않고 미적대면서 책임을 회피한 게 소비자들의 불신을 키웠다”고 말했다.

한편 국토부 등에 따르면 국내에서 결함 가능성이 있는 다카타 에어백을 장착해 리콜했거나 리콜 예정인 수입차는 4000여 대로 파악됐다.

하현옥 기자 hyuno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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