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톨릭 교회의 장래는 제3세계에 있다" | 해방신학의 「보프」 신부 회견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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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지난 7일 진행된 바티칸 교리성생의 「레오나르도·보프」 신부에 대한 「대화」의 경과 및 내용이 17일 서독 시사주간지 슈피겔과 「보프」 신부와의 인터뷰에서 최초로 공개됐다. 다음은 「보프」 신부와의 인터뷰를 요약한 것이다.
-사문회에서 당신이 말한 「대화」의 내용은?
▲나는 두 가지 문제를 얘기했다. 하나는 로마 가톨릭과 타기독교들과의 분열, 다른 하나는 카스타 메레트릭스로서의 교회, 즉 성스러운 창녀로서의 교회였다.
카스타 메레트릭스는 교회의 2중성에 자주 이용되고 있다. 교회가 낮에는 성스럽다가도 밤이 되면 지저분하게 행동한다. 그리스도는 필시 해방신학을 통해 이런 교회를 정화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라칭거」는 이에 대해 다른 사람을 그렇게 본다면 그것은 대단히 바리새인적 이라고 대답했다.

<교회도 공동사회다>
-또 다른 문제에 대해서는?
▲나는 기독교 교회가 꼭 카톨릭 교회이어야만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서 확인했듯이 다른 교회들도 그들에게는 중요한 교리가 있기 때문에 기독교교회로 존재한다고 나는 말했다. 신앙 교리성생 장관 「라칭거」 추기경은 이에 대해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그렇게 확인한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당신이 말하고 있는 교회는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
▲우리들에게 있어 교회란 유럽에서처럼 앞으로는 더 이상 무명의 이익사회가 아니라 하나의 공동사회를 말한다. 우리는 이런 공동사회를 예수가 살았던 당시와 같이 만들려고 한다. 이런 교회에선 사제들은 민중들의 수준으로 내려오고 민중들은 사제들의 수준으로 올라가는 것이다.
-남미에는 복음을 정치적으로 해석하고 그리스도를 하늘나라로부터의 구세주가 아닌 지상에서의 해방자로 해석하는 성직자들이 있는데….
▲나 자신 『해방군, 예수 그리스도』란 책에서 그리스도가 추상적인 의미에서의 인간일 뿐 아니라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실제로 육신으로 화했다는 의견을 내세웠다.
4개의 복음서는 커다란 희망을 일깨워 주고 많은 사람들이 뒤따르게 되는 생생한 인간의 역사를 얘기해 주고 있다. 바로 여기서 예수와 권력의 핵심과의 분쟁이 벌어지고 그 때문에 예수는 죽을 수밖에 없었다.
-예수가 최초의 계급투쟁가였다는 말처럼 들리는 데….
▲그게 바로 바티칸이 우리에게 해방신학이 마르크스주의 경향으로 흐르고 있다는 비난과 똑같은 얘기다. 실제로 우리에게 있어 마르크스주의는 부차적인 것이다.

<정당정치 활동 안해>
-마르크스주의를 분석수단으로 이용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막스·베버」의 사회학적 방법이나 카톨릭 사회학으로는 충분하지 않은가.
▲가톨릭사회학이란 개념 자체가 벌써 유일한 학문이란 것을 나타내고 있다. 이 학문에서 나오는 결론이란 아마 최종적인 단계에서나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처음부터 현실에 얽힌 갈등을 파악해야 한다. 세상을 가난한 사람들의 눈으로 봐야하기 때문에 가톨릭 사회학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가난한 사람들의 눈으로 무엇을 보는가.
▲절망적인 현실이다. 마르크스주의 전통은 우리들의 임무 수행에 도움이 되는 몇가지 개념들을 제시해 주고 있다.
-남미의 사제들이 정치활동의 앞에 나서고 무기까지 잡은 상황에서 종교와 혁명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사제들이 무기를 손에 들었던 것은 「카밀로·토레스」가 살았던 1960년 뒤였다 (「카밀로·토레스」는 학생담당 신부로서 콜럼비아대학의 사회학 교수로서 1966년 정부군에 대한 빨치산으로 대항하다가 사살된 인물). 지금 남미에서 그런 일은 거의 없다.
물론 정치활동을 하는 사제들은 있다. 그러나 정당 정치적 의미의 활동은 아니다.
-사제들이 정치적으로 정당을 장악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인가.
▲물론 현재의 교회법으로 그런 것은 허용되지 않고 있다. 바티칸은 수백년 동안 정치적 강자였으며 지금도 그렇다. 교황이나 주교들은 수백년동안 교회의 지도자였을 뿐 아니라 동시에 지도적인 정치인들이었다.
-바티칸측이 주장했듯이 해방신학이 자동적으로 폭력과 연결되는 것은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바티칸은 해방신학에서 얘기하는 「민중」이 「가난한 사람」을 뜻하고 「가난한 사람」은 「프롤레타리아」와 같은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마르크스주의의 독트린을 다른 말로 바꾼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우리들에게 「가난한 사람」 들이란 마르크스주의적인 의미에서의 프롤레타리아가 아니다. 빈궁화되는 산업노동자로서의 프롤레타리아는 우리에게는 사소한 것이고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우리가 말하는 가난한 사람들이란 지구상의 모든 피압박자들, 한마디 말도 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더 자세히 말해 줄 수 있는가.
▲우리 브라질에는 2천 1백만명의 고아들이 있다. 이 숫자는 중미의 전체 인구보다 많은 숫자다. 아프리카 흑인 국가의 어떤 나라도 나이지리아를 제외하곤 이만한 인구를 가진 나라도 없다. 이런 사람들을 위해 우리가 투쟁하고 있는 것이다.

<살아있는 교회 원해>
우리보고 마르크스주의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한다고 하는 말들은 모두 우리의 적이 사회건 교회건 아무것도 바꾸지 않겠다는 것을 감추도록 할 뿐이다.
-당신이 말하고 있는 점으로 보아 지금까지의 교회질서와는 전혀 합치될 수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교회가 분열되는 수밖에 없는 것은 아닌가.
▲나는 현재의 교회에서 두 가지 커다란 원칙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하나는 모든 것을 로마에 의해 조직화되고 통치되기를 바라는 일원중심적인 교회, 또 하나는 지역적인 중심을 가진 다원중심적인 교회다.
바티칸 제2차 공의회는 다원중심적인 교회를 뒷받침했다. 죽어가는 교회를 지탱하려는 「오푸스·다이」 같은 교단은 물론 여기에 합당하지 않다. 남미와 아프리카의 우리들은 살아있는 교회를 원하고 있다.

<교회의 사활 걸려>
재래의 교회가 그 위계질서와 추기경·주교직 등 자리에 집착하지 않는다면 분열이 있을리 없다.
-앞으로 더욱더 그들이 강경하게 나오면 로마 가톨릭을 버릴 것인가.
▲나는 언제까지교회에 남아있고 싶다. 아마 로마가 우리에게 잘못했다고 사과하는 때가 올 것이다.
2000년 뒤에는 가톨릭 신자의 3분의 2가 제3세계에서 살게 될 것이다. 가톨릭 신자의 대다수가 더 이상 유럽과 배미에 살지 않게 된다는 것은 로마의 역할과 중요성을 변화시키지 않을 수 없다. 로마는 더 이상 교리의 선도자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로마 카톨릭 교회 중심으로서의 「로마의 종말」이 아닐까.
▲로마는 행정적 중심지로서 남아있을 것이다. 그러나 더 이상 강력한 구심점은 아니다. 유럽 교회의 헤게모니는 점점 더 큰 교회들이 있는 변방으로 옮겨가게 될 것이다.
-말하자면 현대적 「종교개혁」인가.
▲그렇다. 종교개혁이지만 미래가 있는 종교개혁이다.
-로마 교회는 거의 2천년간 존속해 왔다. 어째서 로마 교회가 해방신학의 타격을 입지 않고 살아남을 수가 없다고 보는가.
▲변방에 새로운 대교회를 용납하는가 안하느가 하는 것은 교회의 사활에 관한 문제다. 유럽에서는 어쨌든 교회가 죽어가고 있다. 가톨릭 교회의 장래와 희망은 제3세계에 달려 있다.
【본=김동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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