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 “한·일, 제3국 시장 공동진출 확대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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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한일경제인회의 개막에 앞서 허창수 전경련 회장(왼쪽 셋째)과 사카키바라 사다유키 게이단렌(일본 전경련) 회장이 악수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인호 한국무역협회 회장, 문재도 산업통상자원부 차관, 허 회장, 사사키 미키오 일한경제협회 회장, 사카키바라 회장, 벳쇼 고로 주한 일본대사. [최승식 기자]

13일 오후 3시.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크리스탈볼룸에 한·일을 대표하는 재계 인사들이 모였다. 단상에는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 기념 제47회 한일 경제인회의’란 플래카드가 높이 걸렸다. 단상에서 만난 허창수(GS 회장)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과 사카키바라 사다유키(<698A>原定征·도레이 회장) 게이단렌(經團連·일본의 전경련) 회장이 손을 맞잡고 가볍게 안으며 인사를 나눴다.

1998년부터 한국과 인연을 맺었다는 다카스기 노부야(高杉暢也) 서울재팬클럽 고문에게 기자가 “한·일 관계 경색이 양국 간 경제에 영향을 미치느냐”고 물었다.

 “있지요. 엄청나게 있어요.”

 그는 “경제는 인간이 하는 것이다”며 “감정이 상하면 투자도 하기 어려워진다”고 우려했다. 그는 지난 2월 14년 만에 한·일 통화 스와프(맞교환)가 종결된 것을 대표적인 예로 들었다. 그는 “이런 상황은 엔저와 맞물려 수출 의존적인 한국 경제에 특히 나쁜 영향을 준다”며 “한국과 일본은 서로를 필요로 한다”고 말했다. 이수헌 삼남석유화학 대표는 “중국과 많이 교류하지만 여전히 일본에서 원자재·부품을 들여오는 경우가 많다”며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일본 기업 입장에서 투자를 망설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도 기자와 만나 “고립되면 혼자 못 산다”며 “정치는 정치고 경제는 경제인 만큼 (경제인들끼리) 이렇게라도 협력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악의 한·일 관계 속에서도 양국 경제인들은 한목소리로 협력을 이야기했다. 13~14일 롯데호텔에서 열리는 한일 경제인회의에서다. 회의는 69년부터 한·일 정치 상황과 관계없이 양국을 오가며 매년 빠짐없이 열려왔다. 올해는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을 맞아 열렸다. 이번 회의에는 한국에서 허창수·박삼구 회장과 김윤(삼양홀딩스 회장) 한일경제협회 회장, 류진 풍산그룹 회장, 김인호 한국무역협회 회장과 일본에서 사사키 미키오(佐木幹夫) 일한경제협회 회장(전 미쓰비시상사 회장), 사카키바라 사다유키 회장, 아소 유타카(麻生泰) 아소시멘트 사장, 벳쇼 고로(別所浩郞) 주한 일본대사 등 300여 명이 참석했다.

 무거운 분위기에서 열린 회의만큼 한·일 경제 상황은 녹록지 않다. 지난해 한·일 교역량은 글로벌 경기 침체, 악화한 한·일 관계로 인해 5년 새 최저치를 기록했다. 올 1~3월 교역량도 전년 동기 대비 13.9% 급감했다. 이런 상황에서 양국 경제인들은 “정치 문제가 경제로 번지지 않도록 노력하자”고 입을 모았다.

 일본 화학회사 도레이의 고이즈미 신이치(小泉愼一) 특별고문은 “경제 분야에서 지금까지 쌓아온 신뢰 관계가 있기 때문에 단기간에 나빠지지는 않을 것”이라며 “비즈니스는 상호 신뢰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경제 교류뿐 아니라 문화 교류 등 다양한 분야에서 양국을 오가며 신뢰를 쌓아야 한다”고 말했다.

 공통 화제로 떠오른 건 한·일 자유무역협정(FTA)을 비롯한 교류 확대였다. 김윤 회장은 “한·일을 비롯한 동아시아가 아직 명확한 경제공동체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며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을 맞는 ‘골든 타임’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라도 FTA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통해 긴밀히 협력할 수 있도록 양국 경제인들이 힘을 합쳐야 한다”고 말했다. 허창수 회장은 “향후 50년 새 역사를 만들기 위해서는 기성세대의 긴밀했던 협력 관계를 다음 세대에도 이어가야 한다”며 “전경련 차원에서 한·일 간 젊은 경제인의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특별 강연에 나선 강상중 도쿄대 명예교수는 “‘구존동이(求存同異·차이를 인정하되 같음을 추구함)의 한·일 관계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 앞서 박근혜 대통령은 한일경제인회의 참석차 방한한 일본 측 대표단을 청와대에서 만나 “양국은 한·중·일 FTA와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논의 과정에서 긴밀한 공조체제를 유지해 나갈 계획”이라며 “광역 FTA는 기업인들이 같이 비즈니스를 할 다양한 기회를 제공하고 시너지 효과도 낼 수 있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또 “자원소비국인 양국은 에너지 분야 협력 여지가 크다. 해외 인프라 건설 경험이 많다. 일본 기업들이 에너지·인프라 분야에서 상호 윈윈할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을 발굴해 보다 적극적으로 한국에 진출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어 “한국의 정보기술(IT) 기반 의료시스템과 일본의 자본력·기술력이 결합하면 효과적으로 시장에 진출할 수 있다”며 “콘텐트·의료·헬스케어 등 분야에서 제3국 공동진출 협력을 확대하자”고 제안했다. 박 대통령이 양국 간 적극적인 경제 협력을 주문한 것을 두고 경색된 한·일 관계를 경제 분야에서부터 회복시키려는 뜻이 담긴 것 아니냐는 해석이 외교가에서 나왔다.

이날 일한경제협회 대표단은 박 대통령에게 조속한 한·일 정상회담 개최를 요청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박 대통령의 반응과 관련, “확인하기가 어렵다”고만 했다.

글=신용호·구희령·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
사진=최승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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