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낯 뜨거운 당·청 간 공무원연금 네 탓 공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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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공무원연금법 개정안 처리가 무산된 데는 야당 못지않게 집권당과 청와대의 책임도 크다. 당·청이 손발을 맞춰가며 야당과 노조를 설득하 기는커녕 국회 처리가 무산된 책임을 놓고 서로 ‘네 탓 공방’을 벌이고 있다. 대한민국 집권세력의 수준이 이 정도인가 자괴감마저 들 정도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그제 밤 “청와대도 협상안을 이미 다 알고 있으면서 이제 와서 협상안에 불만을 보이느냐”며 반발했다. 당초 협상 대상이 아니었던 국민연금 명목소득대체율을 현행 40%에서 50%로 상향 조정한다는 부분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이 “국민 합의가 우선돼야 한다”며 제동을 건 데 대한 불만을 표출한 것이다. 유승민 원내대표는 “협상 과정에서 청와대 수석도 참석했었는데 청와대가 왜 이러는지 나중에 따져보겠다”고도 했다. 당 일각에선 “당·청 간 조율 과정에서 어떤 얘기가 오갔는지 진상 조사를 해야 한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청와대도 격앙돼 있다. 어제 김성우 홍보수석은 “논의 과정에서 청와대가 알고 있던 것과 다른 합의가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도 “1일 새누리당 지도부와 논의한 합의안 초안과 2일 실제 발표된 합의안은 명백한 차이가 있었다. 밤 사이 연락도 없이 ‘국민연금 50%’에 합의하고 우리 실무자에게 보여주지도 않았다”고 항변했다. 당·청 간 진실게임 양상이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

 당·청 간 엇박자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라지만 이쯤 되면 정상적인 당·청 관계라고 보긴 어렵다. 서로 한 몸처럼 긴밀히 움직여야 할 집권당과 청와대가 불신과 불통, 낯 뜨거운 책임 떠넘기기 공방을 벌이고 있으니 한심한 노릇이다. 당·청 간 소통 시스템에 큰 장애가 생겼거나, 그게 아니면 제각기 딴생각을 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살 수밖에 없다. 이래서야 어떻게 야당과 노조를 설득해 공무원연금 개혁과 노동개혁 등 국정개혁을 추진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박 대통령은 어제 “정치권은 당의 유불리와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 오로지 국민을 위한 개혁의 길에 앞장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옳은 지적이다. 하지만 국정의 최종적이고 포괄적인 책임이 있는 대통령이 제3자적 입장에서 남의 일 얘기하듯 해선 곤란하다. 대통령은 평론가가 아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