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리시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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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작년에는 고추를 늦게 심어수확이 적었다. 해서 금년에는 서둘렀고 모종이 자라기가 바쁘게 그동안 장만해 두였던 고춧대를 매일 1백개, 혹은 50개쯤 세워서 묶어주는데 며칠이 걸렸다. 가랑비를 맞으며 1백개이상 고춧대를 세우는 아침이면 허리가 아팠다.
어떡하든 고추를 많이 따야겠다고 작심한만큼 가물때는 물을 대주고 풀을 뽑아 주고 밑가지를 잘라 주고 내딴에는 최선을 다했는데 까닭모르게 말라 죽는것이 있어서 속이 상했다.

<농민의 증악감에>
한번은 튼튼하게 고추도 제법 달린것 두포기가 잔등이 뚝부러진채 시들고 있어서 두고두고 애석했다. 그리고 동시에 농민들의 울분같은것이 내가슴을 뜨겁게 했다.
자식 기르듯했던 것들이 생산비도 못건진채 장바닥에 나뒹굴고, 값으론 따질수 없는 보살핌의 나날을 생각한다면 앉아서 편하게 사먹는 도시인에 대하여 증오감이나 모멸감을 가진들 할말이 없을것 같다. 오늘의 현실은 유식한 도시인에 대하여 경의를 표하는 농민이 없다.
지난 일요일이었던가, 닭똥을 경운기로 여덟번 들여왔다.
이웃 양계장에서 친절하게 가져가라는 말을 듣고도 농번기라 경운기 사정이 여의치않아 차일피일하는 사이 비가 오시고, 때문에 실어온 닭똥은 그야말로 물렁죽이었다.
실어온 아저씨 말씀으론 왕겨나 짚을 넣어야 거름으로도 좋고 옆으로 퍼지지도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갑자기 왕겨나 짚을 구해 올 방도가 없었다.
양계장아주머니께서도 그런 말씀을 했으나 예사로 들었던것은 내 무식의 소치였다.
가을이면 다 썩은 거름을 사다 썼기에 물렁죽이 되어 땅바닥에 깔리는것을 미처 생각지 못했던것이다.
다음날엔 비가 오셨다.
엉겁결에 비닐을 덮기는 했으나 워낙 넓은 면적을 차지하여 다 덮지 못했고 냄새가 요란했다. 비가 멎는 것을보고 말릴 요량으로 비닐을 걷었다.
『할머니, 냄새가 나』
오디를 따다가 하는 둘째손자의 말이었다.
『우리 아기도 밤먹고 자라지? 닭똥은 나무랑 채소의 밥이란다. 나무랑 채소도 밥을 먹어야 자라요』
『응.』

<비오신다는 예보>
일기에보는 며칠새 또 비가오신다고 했다. 장마철로 접어들기라도 한다면 온 뜰안이 닭똥죽으로 질퍽거릴 판국이다. 나는 몸빼를 입고 고무장갑을끼고 밖으로 나갔다.
바쁜 철이라 품을 사는것은 엄두도 낼수없다. 자업자득이니 누굴 원망할수도 없고, 말하자면 오물인데 누굴보고 처리해달라 하겠는가. 리어카를 끌고 2, 3년동안 모여서 피라미드처럼 쌓아놓은 풀을 나르기 시작했다.
닭똥 중심부에 풀을 깔고 언저리의것을 삽으로 걷어 올리는데, 닭똥은 삽에 붙어 잘떨어지지도 않거니와 떠올려지는것도 적어서 힘만 들었지 며칠 몇날을 해도 진도가 있을것 같지 않다.
『에라 모르겠다! 「토지」의 송관수는 맨손으로 인분을 쓸어담았는데 고무장잡을 끼고 이걸 못해?』
두손으로 가장자리의 닭똥을 공처럼 뭉쳤다. 그리고 풀을 깔아놓은 중심을 향해 던졌다.
풀이 묻으면 다시 두손으로 꽉꽉 뭉친 닭똥을 계속해서 던졌다.
반나절이나 그짓을 되풀이하다보니 닭똥이 깔린 면적은 좁아지고 어지간히 피라미드에 가까와졌다. 몸을 씻고 옷을 갈아 입었으나 냄새가 배어 고약했다.
코피 한잔을 끓여 나무밑 벤치에 앉아서 마셨다. 팔은 철봉을 매단듯 무거웠지만 기분은 상쾌했다. 일종의 자부심 같은것도 느껴졌고 이웃 농민들에게 품은 열등감도 달랠수 있었다. 그러나 하룻밤을 자고 보니 그 피라미드는 다시 평평해져 있지 않은가.
『할수 없지』
비닐을 씌웠다. 노력은 전적으로 혓되지는 않았다.
비닐밖으로 비어져 나오는것은 없었으니까. 더이상 땅에 깔리지 않게 큰 돌을 수없이 날라다 비닐 둘레에 쌓아 올렸다. 그리고 흙으로 덮었다.
자리를 많이 차지했으나 완전 말폐에는 성공이었다. 이제 바람이 불고 소나기가 쏟아진다 해도 끄떡없으리. 그리고 떨어지는 살구도 먹을수 있을 것이다.

<치유받은 내영혼>
생각해보면 기막히게 고달픈작업이었다. 그런데도 외로움이나 한탄이 없는 자신이 이상했다. 자연은 과민하고 상처받기쉬운 내 영혼을 언제 이토록 실하게 치유해 주었을까.
내 뜰은 생명으로 충만되어있다. 해충을 이겨낸 나무와 채소는 눈이 시리도록 푸르고 마이신으로 길들여진 중병아리 열한마리는 우리집에 온뒤 그중 여섯마리가 나가 떨어졌지만 나머지 다섯마리는 약같은 것없이 햇별보고 야채먹으며 잘자라주고 있다.
고추며 옥수수며 모조리 결판을 내던 들쥐를 퇴치하는 고양이가족, 밤에는 짖어주는 강아지, 발소리가 나면 웅덩이에서 건져온 모기의 유충과 실지렁이를 받아 먹으려고 모여드는 붕어들-.
이들을 거둬 먹이는것으로 아침이 열린다.
또있지.
얼마전에 고춧대를 세우는데 바다 속으로 가라앉았다는 절설의 이상향 「아틀란티스」라는 낱말이 머릿속에 퍼뜩 떠올랐다.
그순간 아들락스! 아들락스! 개구리의 울음소리가 귀청을 찢었다. 무의식중에 그 소리가 「아틀란티스」를 상기하게 했는지 모른다.
개골개골도 아니요, 맹꽁맹꽁도 아닌 아들락스! 아들락스!하고 분명히 그렇게 울었다.
까맣고 못생긴 개구리, 웅덩이속에서 그들은 일군을 이루어 울고 있었다.
큰 손자의말이 그놈들은 개구리가 아닌 맹꽁이라고 했다.
다음날엔 그 요란한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가보았더니 팽끙이들은 간곳이 없고 수면에 수없이 많은 알이떠 있었다. 알은 다음날 올챙이로 변해 있었다.
『할머니, 물 빠지면 올챙이들다 죽어요. 꼭 물 넣어 주세요. 꼭이요.』
큰놈은 당부당부하고 갔다. 작년에도 올챙이에게 물을 대주었다.
그러나 비가 많이 왔었던 그때와 달리 물은 쉬이 빠지고 그 넓은 웅덩이에 물을 채우기란 난감한 일이었다.
양회로 발라 놓은 그 옆 「완성되지 않는 연못」웅덩이에 우글우글하는 올챙이들을 옮겼는데 걱정이 된다. 양회가 미처우러나지 않았던 곳이어서 죽으면 어쩌나.
그래 못쓰게 되어 방치했던 목욕탕 욕조에 물을 붓고 더러는 그곳에도 올챙이를 옮겼다.
손자가 무섭기도 했고, 다같은 웅덩이건만 흙바닥인 곳에만 알을 까는 맹꽁이가 신비스럽기도 했다. 어쨌든 올행이는 모두 건재하다.
자실이 가득 채워주는 생명, 참으로 외경스럽다.

<참으로 옳계사나>
우리집에서 한참을 더 들어가면 황폐한 과수원이 있다. 수령을 다했는지 큰나무들은 상품가치가 없는 열매를 약간씩 달고 임종을 기다리는 노인처럼 음산해 보였다. 인적기 없는 폐원, 그곳이 내마음을 끌었다. 더 들어가고 싶다!
항상 해보는 생각인데 내힘에도 한계가 있고 현재의 집은 처분될 가능성도 없으니 .나는 벼랑 끝까지 온 사람처럼 이집에 못박힐수 밖에 없겠다.
큰집은 나를 누르고 핍박하는 무게지만 그러나 뜰에 충만된 생명들은 다정스런 내벗이며 혈육같은 것, 내 뜰안에서만이라도 독식을 막으며 생명을 잇게 하는….
그러나, 그러나 과연 이것만으로 나는 옳게 살고 있는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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