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도 남 도울 수 있음을 가르쳤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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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올해 초 소록도를 찾은 인천 혜광학교 학생들과 김학년 교사(왼쪽)가 봉사활동을 마친 뒤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사진 제공=인천 혜광학교

"세상 마주보기를 포기하지 않은 아이들 덕분에 상까지 타게 돼 행복합니다."

제1회 청소년 푸른성장 대상의 활동 부문 수상자인 인천 혜광학교 김학년(52) 선생님의 수상 소감에는 시각장애 학생들에 대한 애정이 가득했다. 김씨는 "맥없이 고개를 푹 숙이고 다니거나 멍하니 허공을 쳐다보던 아이가 당당하게 상대방을 대하는 모습을 볼 때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1996년 시각장애인 전문 교육기관인 혜광학교에 부임한 김씨는 이듬해인 97년 봉사단체인 RCY(청소년적십자단)를 만들었다. 장애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나 자신이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라는 생각을 갖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신념 때문이었다. 자신이 학창시절 RCY에서 활동하며 무의촌 진료를 했던 경험도 한 몫을 했다.

그는 집 밖에 나서기조차 꺼리던 학생들을 늘 '험한 길'로 이끌었다. 매주 노인복지관을 찾아 무의탁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팔다리를 주물러 드리는 일부터 등산.스키 등 특기활동까지 이전에는 엄두도 내지 못하던 일들을 하나씩 하게 했다. 복지회관에서 쓸쓸한 나날을 보내던 사할린 동포들에게 이들 학생들은 큰 위안이 됐다.

여러 해 동안 여름.겨울 방학을 함께 보낸 소록도의 한센병 환자들은 이제 혜광학교 학생들이 찾아오는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고 한다. 김씨는 "학생들이 삶에 자신감을 찾아가면서 졸업생들의 사회 진출도 훨씬 활발해 지고 있다"고 자랑했다.

주로 안마사에 국한됐던 직업 선택의 폭이 다양화되고 있는 것도 기쁨이라고 했다. 제자 중 장현진(26)씨는 3년 전부터 지상파 방송의 리포터로 활약하고 있고, 32세에 이 학교에 입학했던 김준봉(35)씨는 침술을 익혀 자립했다. 이 학교 RCY 출신 100여명의 학생들이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 당당하게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무료 개안 수술 주선과 대학 진학 지도 등으로 바쁜 겨울을 보내고 있는 김씨는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단순한 배려 차원을 넘어 장애학생 개개인이 잠재력을 계발할 수 있는 교육환경에 우리 사회의 관심이 모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시상식이 끝나자마자 김씨는 제자들이 모여있는 시각장애인 스키캠프로 서둘러 떠났다. 간호대를 졸업한 김씨는 83년부터 88년까지 인천 선대도의 보건진료소에서 일했다. 94년부터는 인천 용현남중학교에서 보건교사(옛 양호교사)로 재직하다 96년 혜광학교에 보건교사로 부임했다.

임장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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