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급률 20년간 겨우 0.2%포인트 줄여 … 전문가들 “낙제점 개혁안”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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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5호 03면

공무원연금 개혁 합의안이 정치권과 공무원단체의 명분 쌓기용으로 변질됐다. 여야는 타협 시한(2일) 내 개혁안에 합의했다며 생색내기에 급급했다. 한목소리로 “사회 갈등 해결의 모범적 사례가 됐다는 점에 인식을 같이한다”고 자화자찬했다. 하지만 내용을 뜯어보면 당초 제시했던 개혁안에서 후퇴한 ‘합의를 위한 합의’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공무원단체도 연금액을 적게 깎으면서도 국민연금 강화를 위해 노력했다고 주장한다. 공무원연금 절감분의 일부(20%)를 국민연금에 사용하고,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50%로 명시키로 한 내용을 그 근거로 들고 있다.

생색만 낸 공무원연금 개혁

전문가들은 ‘조금 더 내고 조금 덜 받는’ 방식의 공무원연금 개혁안의 최종 성적표를 낙제점으로 평가한다. 하루 80억원씩 발생하는 적자보전액을 크게 줄이지도 못했고, 개혁의 1차 목표인 국민연금과 공무원연금의 통합을 통한 형평성 제고도 요원해졌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정치권이 공무원단체에 휘둘린 것을 개혁 실패의 큰 원인으로 지목한다. 공무원단체가 실무기구에 참여할 때부터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꼴’이란 지적이 나왔는데 결국 그렇게 됐다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까지 나서 과감한 개혁을 주문했는데도 ‘알맹이 없는 안’에 들러리 선 새누리당에 대한 국민적 비판도 거셀 전망이다.

김용하案 비해 62조원 더 부담
단순하게 계산하면 현행 공무원연금 제도는 이렇다. 월평균 300만원을 받는 공무원이 30년을 근무했다면 월 21만원을 내고 은퇴 후 171만원을 받게 된다. 반면 합의안이 시행되면 월 27만원을 내고 153만원을 받는다. 내는 돈은 28% 늘어나지만 받는 돈은 10% 줄어드는 데 그치는 것이다. 당초 정부가 타협안으로 제시했던 순천향대 김용하(금융보험학) 교수안(월 보험료 30만원, 연금액 148만5000원)보다 후퇴했다.

합의안은 기여율(보험료)을 7%에서 9%로 올리고, 노후 연금의 지급률을 1.9%에서 1.7%로 줄였다. 이마저 기여율은 5년에 걸쳐 올리고, 지급률은 20년 동안 순차적으로 내리기로 해 개혁의 효과가 당장 나지도 않는다. 기여율은 공무원이 매달 급여의 몇 %를 보험료로 내는지를 말한다. 연금액은 ‘평균 월급여×재직연수×지급률’로 산출되기 때문에 지급률이 올라갈수록 받는 연금액도 커진다.

개혁이 크게 후퇴하면서 재정 절감 효과도 미미해졌다. 현행 제도에서 2016년부터 2085년까지 정부가 떠맡아야 하는 총 재정부담금은 1987조원이다. 이번 합의안이 시행되면 1654조원으로 줄어든다. 하지만 394조5000억원을 절감할 수 있는 김용하 안(1592조원)에 비해 62조원가량 절감 효과가 낮다. 총 재정부담금은 국가가 대신 내주는 기여금과 퇴직수당, 연금 적자에 따른 보전금을 모두 합친 금액이다.

전문가들은 연금 개혁의 성패는 기여율 인상보다는 지급률 삭감에 달렸다고 지적한다. 내는 돈(기여율)을 올리는 것보다 받는 돈(지급률)을 깎아야 재정 절감 효과가 나타난다는 뜻이다. 셀프개혁안을 내놓은 주무부처인 인사혁신처도 이런 사실을 인정했다. 이근면 인사혁신처장은 지난달 14일 공무원연금 개혁 특위에 참석해 “근본적으로 총 재정지출을 줄이기 위해선 기여율 조정보다는 지급률을 낮추는 게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이런 상황인데도 연금 개혁은 거꾸로 갔다. 보험료 인상(28%)에 비해 연금액 삭감(10%) 폭이 너무 작아 시늉만 냈다는 지적이 나온다. 새누리당에서조차 “최소한 김용하 안이 마지노선이었는데 지나치게 양보를 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김용하 안은 기여율 10%, 지급률 1.65%로 해서 한 해 들어오고 나가는 돈을 0으로 만드는 수지균형안이다. 당초 새누리당 제시안(기여율 10%, 지급률 1.25%)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의 의견을 받아들여 양보한 내용이었다.

‘20년간 쥐꼬리 인하’ 꼼수
공무원연금 개혁은 실패의 역사를 거듭해 왔다. 1995년과 2000년, 2009년 세 차례 손질을 했지만 한계만 드러냈다. 당시 택한 방식이 기여율과 지급률을 조금씩 올리고 내리는 방식의 모수개혁이다. 2009년 개혁은 기여율을 올리고(5.5%→7%) 지급률을 내렸지만(2.1%→1.9%) 재정 절감 효과가 크지 않아 이번 개혁으로 바통이 넘어왔다. 실패를 교훈 삼아 지급률을 과감하게 깎거나 신규 공무원은 국민연금 수준으로 맞추는 구조 개혁으로 갔어야 하는데 이번에도 과거에 실패한 방식으로 물타기를 했다.

이번 개혁은 그간 실패한 모수개혁보다 더 큰 실패라는 지적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20년간 지급률을 순차적으로 낮추는 것을 대표적인 독소조항으로 꼽는다. 차후 연금 개혁 논의를 원천 봉쇄하려는 의도라는 이유에서다. 익명을 원한 연금 전문가는 “20년간 천천히 지급률을 내린다는 의미를 곱씹어 보면 결국 이 기간 동안엔 개혁 논의를 다시 하지 말라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면서 “판을 깨더라도 다시 제대로 된 개혁 논의를 하는 게 맞다”고 지적했다.

공적 연금 강화라는 명분도 대국민 생색내기 공수표에 그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합의안은 공무원연금 절감분의 20%(약 70조원)를 국민연금에 쓰도록 했다. 동시에 국민연금의 명목소득대체율(평균 급여 대비 연금액의 비율)을 50%로 묶어 두기로 합의했다. 공무원단체가 스스로 연금액은 깎으면서 국민을 위한 공적 연금 강화에 힘썼다는 주장을 펼치는 근거다.

국민은 이런 공무원들의 주장에 동감할 수 있을까. 전문가들의 분석은 부정적이다. 국민연금은 2007년 개혁을 통해 60%인 소득대체율을 2028년까지 40%로 왕창 깎아 놓았다. 연금액으로 치면 3분의 1이 떨어져 나간 것이다. 이렇게 해도 2060년에는 기금이 모두 소진돼 추가 개혁이 필요하게 된다. 그런데 50%까지 명목소득대체율을 높이면 기금 고갈시기가 더 빨라져 국민연금 개혁 논의를 앞당길 수밖에 없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윤석명 연구위원은 “20년에 걸쳐 지급률을 낮춘다면 현재 재직 중인 공무원 상당수는 아무런 타격이 없다”며 “신규 공무원이 재직 공무원의 부담을 떠안고 가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이어 “공무원연금은 가입자가 107만 명인데 국민연금은 2000만 명이 넘는다. 여기다 웬만큼 돈을 투입해서는 명목소득대체율을 50%로 올리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비판했다. 건국대 김원식(경제학) 교수도 “국민연금도 기금이 고갈되면 정부가 세금으로 조달할 수밖에 없다”며 “결국 공무원연금 같은 운명이 될 텐데 이 문제는 별도의 개혁을 통해 해결해야 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장주영 기자 jyj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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