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노 ‘3철’ 라인이 최측근 … 사람은 좋지만 위기 관리 취약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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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5호 04면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공식 의사결정기구보다 친노 측근의 비선라인에 더 의존한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다. 주승용 최고위원이 “재·보선 패배의 당 공식 입장을 어떻게 최고위원과 상의 한마디 없이 일방적으로 발표하나”라며 반발한 것도 그런 맥락이다.

[집중해부] 4·29서 드러난 문재인 리더십

그의 비선라인 핵심은 이른바 ‘3철’로 통하는 최측근 그룹으로 알려져 있다. 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 이호철 전 청와대 민정수석, 전해철 의원이 그들이다. 참여연대 출신의 김기식 비례대표는 문 대표의 ‘경제교사’라는 전언이다. 비노 계열 당 관계자는 “지난 2·8 당 경선 때 외부에서 영입된 캠프 대변인·부대변인이 문 대표 일정을 전혀 몰랐다”며 공식 라인을 우회하는 문 대표의 스타일을 지적했다. 그는 “차기 원내대표 경선에도 친노는 손학규계인 조정식 의원을 밀고 있다. 대신 수석부대표에 자기 사람을 심으려 한다. 겉을 허수아비로 만드는 대신 손발을 독식하는 게 친노의 방식”이라고 비판했다.

김만흠 한국정치아카데미 원장은 “당 대표가 되고 나서 지지율이 급상승한 게 문 대표에게 독이 됐다”고 진단했다. “경선 때만 해도 계파의 ‘ㄱ’ 자도 안 나오게 하겠다고 하지 않았나. 그땐 위기의식이 있었는데 지금은 모른 척하고 있다. 야권 분열을 비판만 하지 말고, 분열의 근원인 친노 패권주의에 답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에이스는 위기 때 빛이 난다. 문 대표 리더십의 또 다른 취약점으론 ‘위기관리 능력 부재’가 꼽힌다. ‘성완종 특사’ 문제가 불거졌을 때 “사면은 법무부 소관”이라고 한 게 대표적이다. 사면의 책임을 이명박 정권에 돌린 대목에 대해 김병준 국민대 교수는 “이명박·이상득한테 물어보라니, 그럼 힘센 놈이 청탁하면 다 들어준다는 얘기인가. 참여정부의 정신을 스스로 망가뜨렸다”고 했다.

선량함이 미덕은 아니다
그가 설화(舌禍)를 빚은 건 이번만이 아니다. 최근엔 이완구 총리 인준 과정에서 “호남 총리론”에 이어 “여론조사로 총리 통과를 결정하자”고 제안해 비난을 샀다. 새누리당 이진복(부산 동래) 전략기획본부장은 “문 대표의 언어는 타이밍을 놓치며 핵심을 비켜 나간다”고 평했다.

그의 정치 레토릭 수준에 대해선 당내에서도 평가가 박하다. 친노로 분류되는 당의 한 관계자도 “긴급 기자회견을 한다고 해서 ‘성완종 특사는 이래서 불가피했다’란 설명이 있을 줄 알았다. 근데 ‘돈 받은 적 없다’는 엉뚱한 답을 내놓았다. 안 하느니만 못했다”고 전했다. 서울 관악을 정태호 후보 운동본부의 한 관계자도 “선거 전날 박근혜 대통령이 ‘성완종 특사도 문제’라고 하지 않았나. 다들 문 대표 입만 쳐다봤다. 근데 우왕좌왕하더라. 대표 동선 짜는 것부터 어떤 메시지를 내보낼지에 이르기까지 혼선이 많았다”고 토로했다.

김만흠 원장은 “성완종 리스트 파문은 2년 전 국정원 댓글사건의 복사판”이라고 진단했다. “그때도 문 대표가 ‘대화록을 공개하자’고 하면서 상황이 역전되지 않았나. 이번에도 새누리당의 물타기가 있었지만 친박 부정부패가 참여정부 특사 공방으로 전이된 것은 문 대표가 자초한 측면이 크다”고 분석했다.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도 “유능한 경제정당을 주창할 때까지만 해도 판세가 나쁘지 않았는데 성완종 파문에 허겁지겁 ‘정권심판론’ 카드를 꺼내든 게 문제”라며 “전반적으로 이슈를 선도하기보다 외부 상황에 끌려가는 모양새”라고 했다.

이는 궁극적으로 “문재인이 진짜 정치 리더인가”라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정치인 같지 않다”는 점이 처음엔 매력적 요소였으나 대권 주자 반열에 오르면서 부메랑이 되는 형국이다.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은 “문 대표의 긴 속눈썹과 사슴 같은 눈망울을 보라. 어떻게 권력 다툼을 할 수 있겠나”며 “정치는 착하기만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게 아니다”고 했다.

문 대표가 떠밀리다시피 2012년 정치에 발을 들여 놓았다는 건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2002년엔 절친이자 당시 대선 후보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부산시장을 권유했지만 “난 참모용”이라며 고사했다. 노무현 정부 초대 민정수석이었으나 1년 만에 청와대를 떠나 이후 네팔 산행에 나서기도 했다. 그가 청와대로 돌아온 것 역시 권력욕보다는 탄핵으로 궁지에 몰린 친구를 돕기 위해서였다. 청와대 모든 직원에게 존댓말을 썼고, 노무현 정부 시절 검사장으로 승진한 17명 중에 문 대표 동문(경남고)이 한 명도 없었다는 건 유명한 얘기다. 김병준 교수는 “정말로 사심 없다. 단일 가치를 위해 목숨을 걸 사람”이라고 평했다.

하지만 선량함이 절대 미덕으로 통하기 어려운 게 정치현실이다. “젠틀맨 문재인이 문제다. 정치는 싸움과 협상인데 순한 문재인은 그냥 좋은 게 좋은 거”(인터넷 ID:shao)라는 지적도 있다. 김병준 교수는 “정치란 결단의 연속이다. 문 대표는 청와대에 있었지만 살 떨리는 정책을 결정해 본 경험은 적다”고 했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문 대표가 광주에 왜 전략공천을 안 했을까. 무서운 거다. 욕먹기 싫어서 책임을 피한 것”이라고 평했다.

물론 4·29 재·보선 패배의 책임을 문 대표에게만 돌리는 건 마녀사냥에 가까운 일이다. 박근혜 정부 들어 실시된 네 차례 재·보선에서 야권은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했다. 인구 분포, 언론 환경 등에서 선거지형은 여전히 야권에 불리한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이택수 리얼미터 대표는 “평일에 선거가 치러져 20~30대 투표율이 낮다. 50대 이상 투표율과 배 이상 차이 난다. 야권 후보마저 갈라져 더 어려웠다”고 분석했다. 그럼에도 이번 재·보선을 통해 문재인 리더십의 한계가 드러났다는 게 정계의 중평이다.

“총선에 후보 절반 이상 바꿔야”
새정치연합의 또 다른 고민은 마땅한 대안이 없다는 점이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문재인 리더십이 문제가 아니라 새정치연합 리더십 자체가 붕괴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정계 은퇴를 선언한 손학규 전 대표에게 새삼 시선이 모이는 이유다.

2013년 발표된 민주통합당 대선평가 보고서는 “문재인 후보 캐릭터 정립 실패”를 패배의 한 요인으로 꼽았다. 당시 평가위원장이었던 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는 “책임이 꼭 사퇴를 뜻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하지만 “‘내가 부족했다’고 했는데 그게 무엇인지 진솔하게 고백해야 한다. 당의 악습을 외부로 돌리지 말고 내부에서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만흠 원장은 “내년 총선에 후보 절반 이상을 교체할 각오로 임해야 한다”고 했다. 결국 자신의 정치적 기반인 친노와의 연을 스스로 끊으라는 주문이다. 과연 그가 더 큰 권력을 위해 수족을 잘라낼 수 있을까. 문재인 리더십의 두 번째 시험 무대가 곧 다가온다.

최민우·천권필 기자 minw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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