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 동양정밀(OPC)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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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동양정밀(OPC)은 동사가 지난 68년부터 시판했던 OPC 선풍기와 석유스토브로 널리 알려지기시작했다.
또 요즈음도 시내곳곳의 공중전화부드에서 볼수있는 OPC 전화기를통해 매우 낯익은 기업이다.
그러나 알고보면 동양정밀의 역사는 68년 훨씬 이전인 지난 52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또 현재 동양정밀 7개 계열기업의 주제품은 선풍기나 전화기에서 탈피, 이미 컴퓨터·통신기기등의 첨단기술제품으로 바뀌어있다.
이처럼 일반에게 널리 알려진 부분보다는 안 알려진 부분이 더많은 동양정밀은 그만큼 일찍부터 사무·통신기기분야에서의 기술개발과 제품전환에 묵묵히 힘을 쏟았던 흔치않은 기업이다.
동양정밀의 이같은 색다른기업노선은 창업주인 고 박상선회장이 기업을 일으키게된 내력에서부터 비롯된다.
당시 전화기부품 제조회사에 근무하던 고 박회장은 자석식 전화기가 다어얼식 전화기로 한창 대체되던때인 지난 52년 새롭게 열리는 시장을 내다보고 전화기부품 메이커의 설립에 착안했다.
이후 74년 작고할때까지고 박회장은, 동양정밀을 전화기메이커 선두주자로서 궤도에 올려놓았고 기계식전화교환기도 생산하기 시작했다.
68년부터는 선풍기등일부 가전제품에까지 손을댔다.
그러나 당시 여건에서 별 실속도 없이 자금·조직·선전등 온갖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는 가전은 동양정밀의 체질에 맞지않아 71년부터는 아예 가전쪽에서 미련없이 발을 뺐다.
이처럼 근 20여년간 튼튼한 「포석」에만 힘을 쏟은 동양정밀이 본격적인 세력확장에 들어간 것은 74년 창업주가 작고하고 당시 부사장이었던 창업주의친제 박율선현회장이 경영권을 이어받으면서 부터다.
육사2기로 혁명 직후인61년 예편하면서 그해 동양목재를 설립, 독자적인 사업부터 시작했던 박회장은 75년이후 동양특수기공 (분말야금·통신부품생산) , 동양시스팀산업(컴퓨터판매·제조) , 동양통신공사 (통신시설가설용역) , 동양전자통신(전자교환기생산) 등을 차례로 설립하면서 「제2의 창업」을 이뤄냈다.
군시절 경리쪽을 맡아 계수에 밝으면서도 선이 굵은 스타일의 박회장은 일찍부터 각사의 사장들에게 경영권을 거의 일임, 요즈음도 자신이 직접 결재하는 것은 연초 각사의 업무계획 정도다.
형제 2대에 걸쳐 일찍부터 업종을 전문화시켜온 동양정밀은 사람관리에서도 일찌기 전문성을 찾았다.
모기업인 동양정밀과 동양시스팀산업사장을 경하고있는 권혁조사장은 애초 동양목재에 평사원으로 입사, 오늘날까지 박회장을 보좌하며 2개 주력기업의 책임경영을 맡고있는 대표적인동양정밀의 전문경영인이다.
또 동양정밀은 60년대부터 공채제도를 도입, 이미방계사의 사장을 지낸후 자기사업을 위해 동양정밀을떠난 공채1기가 있으며 현재도 공채1기를이 각사의 전무로 뛰고있다.
동양목재 이병구 사장은 역시 평사원으로 인사, 목재의 상무까지 지낸후 잠시 떠나있었으나 지난해 박회장에 의해 다시 목재사장으로 「귀향」한 특이한케이스다.
동양특수기공의 정연휘사장은 조선공학박사로 76년동사의 전무로 영입돼 사장자리에 오른 「전문두뇌」며,한국통신기술연구소 부소장을 지내다 81년초 영입돼 종합기획실장의 중책을 맡고있는 김종련정밀부사장도 서울대를 나와 미노드 캐롤라이나주립대에서 .전자공학박사학위를 받은 고급두뇌다.
이밖에 체신부 경리국장을 지낸후 정밀부사장으로 인연을 맺어 현재 전자통신 경영을 책임지고 있는 이영만사장이나 육군 통신감 출신의 배수기 동양통신공사 사장도 연관분야에 밝은 전문두뇌라 할수있다.
지난해 계열기업의 총매출이 1천3백억원 규모였던 동양정밀은 외형의 3%정도가 연구개발에 들어갔고 광고선전비는 외형의 0·3%수준에 불과했다.
또 성남에 약2백30명의 전문인력을 확보한 중앙연구소를 두고있으며 일찍부터 대유공업전문대학을 세워 많은 기술인력을 자체흡수하고 있다.
종합적인 「C&C」(Computer&Communication)산업을 앞으로의 목표로 잡고있는 동양정밀은 따라서, 재계에서 몇 안되는 「색깔있는 기업」으로 꼽히고 있다.<특별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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