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우석진실은…] "국가서 진실규명위 구성을 …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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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노정혜 연구처장(왼쪽)이 16일 오전 열린 기자회견에서 황우석 교수의 인간배아 줄기세포 연구결과 재검증 일정을 밝히고 있다. 조사위원회 위원장에는 서울대 의대 기초의학분야 정명희 교수가 선임됐다. 김태성 기자

서울대 황우석 교수 사태는 우리 사회의 여러 가지 허점을 드러냈다. 연구의 진위를 검증할 수 있는 제도나 시스템이 없고 물량이나 실적 위주의 연구 풍토, 과학계 내부의 감시능력 부족 등이 총체적으로 드러났다.

전문가들은 황 교수 사태를 계기로 이런 구멍을 메우지 않으면 언제든지 이런 일이 재발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특히 국가적인 시스템을 정비하기에 앞서 미국이나 독일 등 외국의 과학진실성감시위원회(ORI.Office of Research Integrity)와 같은 기구를 임시로 만들어 황 교수 건부터 검증하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미국의 ORI는 상설 정부기관이다. 또 이런 상설 기구를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검토 과정과 시일이 소요되기 때문에 당장 업무를 할 수 있는 임시위원회 형식으로 만들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박호군 인천대 총장(전 과기부 장관)은 "황 교수 건은 공동연구 참여기관만 7개에 이르는 등 서울대가 조사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선 것"이라며 "과기부나 국가과학기술위원회 등을 중심으로 미국의 ORI 같은 기구를 임시로 만들어 조속히 가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황 교수 건은 황 교수나 서울대 체면의 문제가 아니고 대한민국의 문제로 확산됐기 때문이다. "이런 방법이 국제사회에서 추락한 한국의 왜곡된 이미지를 바로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허술한 법과 제도=2003년 우리나라 과학자들이 국제 학술지에 발표한 논문은 1만7785편으로 세계 13위 수준이었다. 정부가 지원하는 연구비만 한 해 6조원대에 이를 정도다. 이에 따라 논문으로 발표되지 않는 연구 성과도 많다. 하지만 이들 논문이나 연구 성과의 진실성을 검증하는 장치는 전무하다시피 한 실정이다. 과학계에서 논문 표절이나 문제가 생길 경우 해당 기관에서 조사해 징계하는 게 거의 전부다.

국내에는 미국의 ORI 같은 기구가 없다. 정부기관은 물론이고 각 대학이나 연구기관에도 없다. 미국의 경우 공중보건서비스(PHS.Public Health Service) 산하 기관들은 국립보건원(NIH).질병통제예방센터(CDCP).식품의약국(FDA) 등 8개 연방기관에서 수행하는 연구 부정행위를 감시하는 ORI를 1992년 설치했다. 2004년 현재 연간 300억 달러에 이르는 공중보건서비스(PHS)의 연구비 지원을 받은 기관의 연구 부정행위를 감독하고 있다. ORI는 미국 연방정부의 복지부 소속이다.

서울대 소장파 교수들은 최근 황우석 교수팀의 연구 성과 검증을 위해 과학진실성위원회(OSI.Office of Scientific Integrity)를 설치하자고 제안했다. 대부분 미국 대학에서는 다른 연구자의 논문을 베끼거나 데이터를 조작하는 등 '과학적 부정행위(scientific misconduct)'에 대한 제보가 들어오면 OSI가 조사한다. 부정행위를 발견한 사람은 누구나 OSI에 제보할 수 있다.

OSI는 제보를 토대로 예비조사를 벌여 정말 의심할 만하다고 판단되면 별도의 위원회를 구성해 본격 진상조사에 착수한다. OSI는 대부분 각 대학 소속 교수 중심으로 구성된다. 운영 형태는 상설 기구로 하거나 사건이 생길 때마다 임시로 위원회를 구성하는 등 대학별로 약간씩 다르다.

황우석 교수의 논문 진실성을 명명백백하게 규명하는 것만큼이나 과학에서의 기만행위를 다루고 젊은 연구자들에게 연구윤리를 교육할 과학계 내부의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문제 역시 중요하다. 지난 한 달여 동안의 사건 진행 과정에서 알 수 있듯이, 한국에는 '내부 고발자'를 보호하면서 기만행위의 고발을 접수하고 이를 체계적으로 조사할 수 있는 제도적 틀이 대학이나 연구소.지원기관.정부부처 그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외국의 전례들을 참고해 과학에서의 부정행위를 조사하는 표준적 절차와 담당기구를 대학 등의 연구기관이나 지원기관에 상설로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중앙 행정관청을 설치하는 것도 고려해 봄 직하다. 아울러 대학(원)에서는 과학 진실성 감시 관련 주요 내용을 지침으로 만들어 대학원생과 연구자들에게 교육하는 과정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특별취재팀
사진=김태성 기자 <ts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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