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택·곽노현 이어 또 … '조희연표 진보교육' 동력 잃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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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23일 당선 무효에 해당하는 벌금 500만원을 선고받은 뒤 “2심에서 무죄가 입증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김경빈 기자]

조희연(59) 서울시교육감이 고승덕 후보에 대한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1심에서 당선무효형에 해당하는 유죄 판결을 받으면서 ‘조희연표 진보 교육’은 동력을 크게 잃게 됐다. 공정택·곽노현 전 교육감이 교육감직을 상실한 데 이어 조 교육감까지 임기 중 퇴진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서울 교육 현장의 혼란도 우려된다.

이번 판결로 조 교육감의 직무가 당장 정지되는 것은 아니다. 대법원에서 벌금 100만원 이상의 형이 확정돼야 당선무효가 된다. 조 교육감은 판결 직후 상급심까지 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1심 유죄 판결에도 불구하고 서울 교육의 혁신 정책은 굳건히 실행될 것”이라며 “아직 유죄가 확정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서울 교육의 다양한 혁신 정책들을 열심히 추진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난해 7월 취임 이후 ‘혁신교육 시즌2’를 표방해온 조 교육감의 행보는 급속도로 위축될 수밖에 없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의 송재혁 대변인은 “혁신학교 등 추진하던 정책이 후퇴할 것이다. 곽 전 교육감이 당선무효형을 선고받은 이후에도 학생인권 등 주요 정책이 한순간에 무너졌다”고 말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한국교총) 김동석 대변인도 “새로운 정책을 펼치는 것이 힘들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기존 정책도 힘을 잃을 수밖에 없다. 특히 수도권 진보교육감 벨트 중 서울이 무너지면서 진보 교육 진영 전체가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취임 후 조 교육감은 일부 자율형사립고의 지정 취소를 추진했으나 학교 측과 교육부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고 현재 소송이 진행 중이다. 조 교육감이 낙마 위기에 처하면서 자사고는 유지 쪽으로 가닥을 잡을 가능성이 커졌다. 조 교육감은 진보교육감들의 ‘간판 정책’인 혁신학교 확대에도 힘을 쏟았다. 지난해 44곳을 추가 선정한 데 이어 올해 100곳으로 늘릴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 계획도 탄력을 받기 어렵게 됐다. 조 교육감이 2017학년도부터 바꾸겠다고 예고한 고교 선택제도 현행대로 유지될 가능성이 커졌다.

 직선제 도입 후 뽑힌 서울시교육감 네 명 중 세 명이 임기 중 퇴진했거나 퇴진 위기에 몰리면서 교육감 직선제 폐지 주장에 더욱 힘이 실리게 됐다. 2008년 6월 당선된 공정택 전 교육감은 부인의 차명예금 4억여원을 재산 신고에서 누락한 혐의로 2009년 벌금 150만원이 확정돼 물러났다. 곽노현 전 교육감은 2010년 선거에서 같은 진보진영 후보였던 박명기 서울교대 교수에게 단일화 조건으로 2억원을 건넨 혐의로 징역 1년이 확정돼 2012년 교육감직을 잃었다.

 한국교총은 교육감 직선제로 교육정책이 정치 바람에 흔들리기 때문에 폐지해야 한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한 상태다. 반면 전교조 송 대변인은 “정부와 공안 당국이 서울교육감 선거를 표적으로 삼고 있다 ”고 주장했다. 오는 10월 이후 대법원이 조 교육감에 대해 당선무효형을 확정할 경우 내년 4월 13일 치러지는 총선 때 서울교육감 재선거가 실시된다.

 진보 교육진영의 대표 브레인으로 활동해온 조 교육감은 지난해 교육감 선거 초반만 해도 인지도가 낮았다. 투표를 일주일 앞두고도 고승덕 후보의 지지율이 그보다 두 배 이상 높았다. 하지만 투표(지난해 6월 4일)를 5일 앞둔 시점에 고 후보의 딸이 “아버지는 교육감 자격이 없다”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고, 이를 놓고 보수성향의 문용린 후보와 고 후보가 공방전을 벌였다. 그사이 조 교육감은 ‘효도하는 아들을 둔 착한 아빠’ 이미지를 얻으며 당선됐다. 하지만 선거 당시 고 후보의 미국 영주권 보유 의혹을 제기한 기자회견이 부메랑으로 돌아오면서 ‘식물 교육감’ 처지에 놓이게 됐다. 

글=노진호·신진 기자 yesno@joongang.co.kr
사진=김경빈 기자

◆조희연=참여연대 설립에 주도적으로 참여해 초대 사무처장을 맡았다. 2대 사무처장이 박원순 서울시장이다. 2000년부터 성공회대 교수로 재직했다. 1956년 전북 정읍에서 태어나 전주북중·서울 중앙고를 거쳐 75년 서울대 사회학과에 입학했다. 긴급조치 9호를 위반해 구속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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