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남매 키운 할머니, 소녀의 마음으로 72세에 시인 데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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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72살 농자재 판매상 할머니가 늦깎이 시인으로 데뷔했다.

 주인공은 충북 음성군 금왕읍 무극시장에서 50년 넘게 하우스용 비닐 등 농자재 판매점을 운영하는 이기화(72·사진) 할머니다. 올초 ‘오일장 풍경’ ‘향수는 둥글다’ ‘답 찾아가기’ 등 손수 지은 시 10편을 한국참여문학인협회에 출품해 협회가 선정한 시 부문 신인작품상을 수상했다. 협회는 지난달 발간한 『참여문학 2015 봄호』에 이 할머니가 쓴 시 5편을 수록했다.

 이 할머니는 중학교 졸업 학력이 전부다. 시를 쓰기 시작한 건 2012년 동네 병원 원장 장례식에 참석한 뒤부터다. 이 할머니는 “장사일로 바빠 4남매 뒷바라지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아이들이 아플 때마다 치료해 주시고 서울 가서 공부할 때도 꼬박꼬박 약을 챙겨주시던 원장님을 잊지 못해 추도시를 지은 게 등단까지 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추도시를 본 남편 신웅기(75)씨가 “제법 소질이 있네”라며 정식으로 시를 써보라고 권했다. 이 할머니는 금왕읍 노인복지관에서 운영하는 시 배우기 프로그램에 참여해 1주일에 2시간씩 전문 강사에게 시를 배웠다. “3년간 매주 2~3편씩 시를 짓고 유명 시인의 작품을 흉내내다 보니 재미가 붙고 실력도 늘게 됐다”고 했다.

 본격적으로 시를 쓴 건 3년 전부터지만 할머니는 처녀 때부터 글재주가 있었다. 고향인 충북 괴산군 불정면에서 글 모르는 어르신들을 대신해 군대 간 아들이나 외지 나간 자식·손자들에게 써준 편지가 늘 반응이 좋았다고 한다. 이 할머니는 “부족한 작품에 상을 주고 등단도 시켜줘 고마울 따름”이라며 “시를 통해 사람들에게 옛 추억을 선사하고 싶다”고 말했다.

음성=최종권 기자 choig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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