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白球와 함께한 60年] (39) 솔선수범하는 감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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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최관수가 기업은행 군산지점으로 발령이 났다는 소식을 듣고 난 '이제 됐다'싶었다. 그러나 며칠 뒤인 7월18일.내가 경영하던 경성고무에 큰 화재가 났다.

군산상고 야구부의 가장 적극적인 후견인이었던 내가 재정적으로 어려움에 빠질 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야구인들 사이에 돌기 시작했다.그들은 최관수에게 "군산으로 내려가는 것을 다시 생각해봐라.경성고무가 어렵게 되면 이 사장의 살림도 어려울테니 야구부도 넉넉지 못할 지 모른다"며 은근히 만류했다.

그러나 최관수는 남자였다. 그는 "내가 남자대 남자로서 약속을 했는데 살림이 어려워질지 모른다고 해서 어떻게 안가느냐. 군산으로 가겠다"며 신의를 지켰다. 무척 고마운 일이었다.

최관수는 내가 화재를 겪고 일주일이 지난 7월25일 기업은행 허호준 감독과 함께 군산에 내려와 감독으로 취임했다.당시 군산상고에는 김용석, 노석균, 오승열(이상 3학년)나창기, 하태문(이상 2학년), 김봉연, 김준환(이상 1학년) 등이 주축을 이루고 있었다.

최관수 감독이 부임한 뒤 때때로 야구장에 나가보면 선수들이 확연히 달라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최감독은 말이 없고 만사에 솔선수범했다. 그는 선수들보다 꼭 먼저 야구장에 나왔다.또 훈련시간 동안은 아주 진지했다.

선수들도 그가 유명한 선수 출신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 그가 누구보다 열심히 선수들을 가르치니 선수들도 '이렇게 해야 되나 보다'라는 마음이 생기는 듯 했다. 그래서 낙오자 없이 전부 열심히 감독을 따라갔다.

최감독 재임 때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71년 추석 명절 때였다. 김봉연,김준환 등 몇몇선수가 군산 시내에서 술을 마시고 거리에서 난동을 부리는 사건이 벌어졌다. 학교측에서는 "주모자는 야구부에서 퇴출시키고 정학처분까지 고려하겠다"고 나섰다.

그때 최감독이 교장을 찾아가 "아이들을 잘못 가르친 제 책임입니다. 저한테 맡겨주십시오"라며 간절히 부탁했다. 그래서 학교에서는 최감독에게 처벌을 일임했다.

그 다음날, 최감독은 오후 수업을 끝낸 뒤 선수들을 학교에 남게 한 다음 이렇게 말했다.

"추석날 벌어진 일은 너희를 잘못 가르친 나의 잘못이다. 너희들이 벌을 받는 게 아니고 내가 벌을 받겠다"라며 선수들에게 배트를 하나씩 준 뒤 자신을 때려달라고 엎드렸다.

선수들은 "감독님,그렇게 할 수는 없습니다. 차라리 저희를 때려주십시오"라며 버텼다. 이에 최감독은 "너희가 나를 안 때리면 나는 감독을 그만두고 은행으로 돌아가겠다"며 물러서지 않았다. 결국 선수들은 눈물을 흘리면서 최감독을 때렸다. 모두가 펑펑 울었고 운동장 전체가 눈물바다가 됐다.

그 일이 있은 뒤부터 야구부는 하나로 똘똘 뭉쳤다. 탈선 선수가 나오는 것은 상상도 못했고 팀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그해 10월 전국체전 고등부에서 군산상고는 배재고를 꺾고 우승했다.

최감독 취임 1년 2개월 만이었다.그리고 72년 황금사자기 대회에서 또 한번 전국무대 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자신감을 갖게된 군산상고는 전국 무대의 강호로 자리를 확실히 잡았다. 모든게 최관수 감독의 역량에서 비롯된 성과였다.

그는 야구 지도자로서, 인생의 선배로서 학생들의 길잡이가 된 참다운 스승이었다. 그는 세상을 떠났지만 영원한 군산상고의 감독으로서 내 가슴에 남아있다.

이용일 前 한국 야구위원회 사무총장
정리=이태일 야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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