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여야 합의 없는 사학법 일방처리 안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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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국회의장이 제시한 사립학교법 개정 중재안에 대해 한나라당과 민주노동당이 반대하고 나섰다. 민주당은 조건부 수용 의사를 표명했고 열린우리당은 교사회.학부모회.학생회의 법제화가 제외된 데 대해 마뜩찮은 표정이다. 특히 한나라당은 자신들이 발의한 자율형 사립고 법안이 동시에 처리되지 않으면 중재안에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사학법의 대상인 사학법인연합회 역시 완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김 의장의 중재안은 사학재단 이사의 3분의 1을 외부인사로 임명하는 개방형 이사제 도입과 관련, 학교운영위원회나 대학평의회가 2배수를 추천해 이사회가 선택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여당의 안건과는 이사 후보를 2배로 늘린 것이 다를 뿐이다. 학교 구성원 추천에 의한 이사 선임을 강제하는 것은 이사선임권.인사권.재산권 등 학교법인의 기본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 교육 현실을 감안할 때 개방형 이사제가 실시되면 전교조.교수협의회 등 교원단체가 절대적인 지배구조가 돼 학교 경영에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사학법인연합은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내년 신입생 배정을 거부하고 학교를 폐쇄하겠다는 입장이다. 또 다음주 국회 앞에서 대규모 궐기대회를 열 계획이다. 사립학교의 학생 수는 중학교 20%, 고교 54%, 전문대 95%, 대학 78%를 차지하고 있다. 사학법 개정 강행은 결국 교육현장의 혼란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교원평가제 시범실시로 긴장감이 고조된 교육환경에 먹구름이 드리워져 면학 분위기가 흐트러질까 우려된다.

여야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사학의 의사에 반하는 사학법 개정을 서두를 필요가 없다. 여당이 개방형 이사제 도입의 이유로 내세우는 부패.비리 사학의 척결은 현행법으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교육 현안의 우선 순위를 볼 때도 사학문제는 급한 사안이 아니다. 평준화와 전교조 문제의 해결도 지난한데 여당은 왜 사학법 개정에 집착하는가. 여야와 교육부와 사학이 충분한 시간을 갖고 타협안을 만든 뒤에 개정해도 늦지 않다. 국회의장은 9일 직권 상정하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