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대 두 스타 '연말 추위 녹여라' 마술의 승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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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이은결(24)과 최현우(27). 2000년대 들어 마술이 새로운 '문화 코드'로 성장하게 된 데엔 신세대 두 스타 마술가의 공을 빼놓을 수 없다. 수려한 외모와 깔끔한 매너, 예측을 빗나가는 기발한 발상, 음악과 이야기가 담긴 환상적인 무대 등은 이제껏 야바위꾼의 음흉한 눈속임으로 치부되던 마술을 '종합 공연 예술'로 부상시킨 요소다.

두 사람은 올 연말 나란히 독자적인 무대를 펼친다. 이은결이 12일부터 내년 1월1일까지 서울 서초동 한전 아트센터에서 '이은결 In Dreams'(1588-1906)를, 최현우는'매직 콘서트'(02-3433-1788)란 이름으로 16일부터 27일까지 서울 화양동 건국대 새천년관 무대에 오른다. 같은 시기 정면 대결을 벌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둘 사이엔 팽팽한 긴장이 흐르고, 신경전 또한 치열하다. 진검승부의 승자는 누가 될 것인가.

글=최민우 기자<minwoo@joongang.co.kr>
사진=안성식 기자 <ansesi@joongang.co.kr>

10년의 우정, 그리고 결별

1996년 여름, 중3의 소년은 어머니 손에 붙들려 에디슨 마술 학원이란 곳에 갔다. "허우대는 멀쩡한데 애가 너무 내성적이라서 친구도 없어요." 취미 삼아 시작한 마술에 소년은 그대로 빨려들어갔다. 아예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프로 마술가의 길로 들어섰다. 소년은 훗날 마술 월드컵 2위에 오르며 한국 마술의 기량을 세계에 떨친다. 이은결 얘기다.

이은결이 마술의 길에 입문할 무렵, 공교롭게도 최현우 역시 마술계에 발을 들여 놓았다. 서울 강남의 매직 숍을 지나다 우연히 물건 하나를 산 게 계기였다. 너무도 신기해 한 그는 고3임에도 불구하고 한국 마술의 대부인 이흥선 선생이 운영하는 '알렉산더 매직 패밀리'를 찾아갔다. "군기 셌어요. 기술은 그냥 어깨 너머로 배워야 했고 대부분은 허드렛일을 해야 했죠."

출발점은 달랐으나 기량이 출중했던 터라 둘은 의좋은 형.동생이었다. 둘은 2002년 말 아예 한솥밥을 먹었다. 최병락 대표와 의기투합, 국내 최초의 마술 매니지먼트사 '비즈 매직'을 차린 것. TV에도 정기적으로 출연하고 연말이면 '매직 콘서트'란 공연도 꾸준히 올리며 마술의 산업화도 이끌어갔다.

그러나 둘은 최근 결별했다. 이은결이 '비즈 매직'을 나간 것. 이은결 측에선 "마술사를 지나치게 돈벌이에 이용하려 한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비즈 매직' 역시 "회사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 채 자기만 생각한다"고 맞받아쳤다. 같이 사진을 찍자는 제안에도 양측 모두 난색을 표명했다. 감정의 골이 꽤 깊어 보였다.

정통 vs 엔터테이너

두 마술가는 마술을 대하는 태도도 대조적이다. "24시간 마술만 생각한다. 어떤 생각이 휙 들지 몰라 늘 메모지를 가지고 다닌다"는 게 이은결의 말이다. 그는 순결파다. 딴 데 눈 돌리기 싫고 마술의 테크닉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데 집중한다. "해외에 나갈 때마다 내가 얼마나 우물 안 개구리에 불과한지 깨닫게 된다"며 겸손하다. 넘치는 카리스마, 선 굵은 동작과 깔끔한 진행 등 그는 이흥선을 잇는 한국 마술의 적자로 꼽힌다.

반면 최현우는 재기 발랄하다. 지난해 그가 출연한 TV 오락프로그램은 10개가 넘는다. 드라마에 출연하기도 했다. 연예인으로 오해받기도 한다. "마술이냐 아니냐 보단 대중이 원하는 걸 추구하는 게 우선 아닌가"라고 반문한다. "마술의 지평을 넓히고 싶다"고 말하기도 한다. "공연을 위해 얼마나 투자를 받아야 하는지, 후배들을 위해 어떤 제작 시스템을 정착시킬지 고민 중"이라는 대목에선 프로듀서의 느낌마저 든다.

카리스마냐, 즐거움이냐

이은결과 최현우는 마술 스타일도 대조적이다.

이은결의 마술은 '스테이지(stage)'로 분류된다. 스테이지란 음악이 깔린 무대에 서서 다양한 테크닉을 선보이는 것으로, 마술의 가장 일반적인 방식이다. 특히 이은결의 빠른 손놀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최현우마저도 "테크닉 면에서 나보다 한 수 위"라고 토로할 정도다. 이번 공연에선 한발 더 나아간다. 거대 장비가 동원되는 이른바 '일루전(illusion)'기술을 선보이는 것. 세계적인 마술가 데이비드 카퍼필드처럼 헬기나 비행기 등이 등장할지도 모른다. "한계에 도전하고 싶다. 사람들의 상상력을 뛰어넘고 싶다"는 게 이은결의 다짐이다.

반면 최현우는 친근하다. 마술이라기보다 재미있는 얘기를 듣는 기분이다. 그는 테이블에 앉아 동전이나 카드 등으로 관객을 속이는 클로즈업(close-up)에 강하다. 그의 공연에선 관객은 단순한 구경꾼이 아니다. 무대 위로 올라오기도 하고, 심리 테스트를 받기도 한다. 심지어 그는 지금 입고 있는 속옷 색깔이 무엇인지, 첫 키스는 언제 했는지 맞추기도 한다. 관객과의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을 통한 심리전이 그의 주특기다. "난 관객에게 보여주는 게 아니라 그들과 함께 대화하고 싶다. 그래야 공감대도 훨씬 커진다"는 게 최현우의 마술 철학이다.

글=최민우 기자<minwoo@joongang.co.kr>
사진=안성식 기자 <anses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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