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부활절의 악몽' , 7일간의 연휴 후 아무도 모르게 … 금고업체 털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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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보석상 거리인 영국 런던의 해턴 가든. 7일 나흘간의 부활절 연휴를 마치고 나올 때만 해도 상인들은 몰랐을 것이다. 해턴가든의 대여금고 업체가 그 사이 털렸다는 사실을 말이다. ‘부활절의 악몽’이다.

7일 아침 출근한 해턴가든 대여금고 업체 직원들은 깜짝 놀랐다. 45㎝ 두께의 철문은 잘린 채였고 600개 금고 중 300개가 털린 걸 발견해서였다. 경찰이 곧 수사에 나섰다.

현재로선 연휴 중 직원들이 없는 틈을 타 승강기 통을 자일을 타고 내려가는 방식으로 지하에 있는 대여금고에 접근, 방범 창살을 자르고 중연삭 장비를 이용해 45㎝의 철문을 부순 뒤 대여 금고실로 들어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경찰은 그러나 범인들이 몇 명인지, 언제 침입했는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결정적 단서가 될 법한 CCTV자료가 통째로 사라져서다. 범인들이 대여금고와 별도 공간에 있던 CCTV 시스템의 하드 드라이브도 가지고 도주했다.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인사가 개입했을 가능성이 큰 이유다. 영국 언론은 “은행 지하금고를 터는 내용의 2000년 영화 ‘섹시 비스트’와 비슷하다”고 보도했다.

현재로선 피해 규모도 모르는 상태다. 대부분 다이아몬드나 금 거래상들은 연휴가 긴 만큼 귀금속을 자체 금고보단 대여금고에 보관했을 가능성이 커, 피해 금액이 예상치를 뛰어넘을 수도 있다. 노먼 빈이란 보석상은 “100만 파운드(16억2000원), 1000만 파운드, 혹은 그 이상일 수 있다”며 “어쩌면 런던의 역대 강도사건 중 최대급일 수 있다”고 전했다. 대여금고에 10만 파운드어치 보석을 보관 중이던 무함메드 샤란 보석 도매상은 “도대체 얼마나 가져갔는지 알아야하는데 아무도 얘기를 안 해주고 있다”고 “내일을 얘기해준다는데…”라며 발을 동동 굴렀다.

지금껏 영국 금고털이 사건 중에선 1987년 런던의 대표적 부촌인 나이트브릿지 대여금고 강탈사건이 최대 규모다. 무장강도 두 명이 금고를 빌리는 듯 들어가 6000만 파운드어치(현재 가치로 1억500만 파운드)를 강탈했다. 변호사 아들로 이탈리아 출신의 플레이보이였던 주범 발레리오 비체이는 이로 인해 22년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해턴가든 대여금고 업체도 강도를 당한 적이 있는데 2003년 고객인 채 들어온 이가 강도로 돌변, 금고 몇 개를 털어 갔다.

런던=고정애 특파원 ockh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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