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이란 핵 타결로 시험대 오른 한국의 외교 역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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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12년 이상 끌어온 이란 핵 문제가 마침내 해결 국면에 접어들었다. 주요 6개국(유엔 안보리 5개 상임이사국+독일)과 이란의 마라톤 협상이 어제 새벽 극적으로 타결됐다. 6월 말로 예정된 최종 시한까지 추가 협상을 통해 기술적인 세부 사항을 채워 넣는 문제가 남아 있긴 하지만 그동안 논란이 됐던 주요 쟁점들은 대부분 해소됐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특별성명에서 밝힌 대로 이란의 핵 개발을 막을 수 있는 ‘역사적 합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계 핵 비확산 역사에 획을 그은 성공적 협상이라고 평가할 만하다.

 2002년 8월 이란의 반(反)정부단체가 군사적 목적으로 이란 정부가 우라늄 농축시설을 비밀리에 가동하고 있다고 폭로함으로써 시작된 이란 핵 문제는 국제사회의 최대 난제 중 하나였다. 평화적 핵 이용 권리를 내세운 이란과 핵무기 개발을 의심하는 이스라엘의 첨예한 갈등 속에 군사적 충돌 위험이 고조되면서 중동과 세계 정세 불안이 가중돼 왔다. 그러나 2013년 이란에 협상파인 하산 로하니 정부가 출범하고, 외교적 ‘치적’을 의식한 오바마가 ‘외교를 통한 해결’ 노선으로 돌아서면서 협상의 전기가 마련됐다.

 양측은 이란의 핵 활동을 사실상 중단하는 대신 국제사회의 대(對)이란 제재를 해제하는 내용의 포괄적공동행동계획(JCPOA)에 합의했다. 미국은 이란이 보유한 우라늄 농축시설의 대부분을 폐기 또는 폐쇄함으로써 현재 2~3개월인 ‘브레이크아웃 타임’(핵무기 제조를 결심한 시점부터 핵 물질을 확보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최소 1년으로 늘리는 데 성공했다. 이란은 연구에 필요한 최소한의 저농축 활동은 계속할 수 있게 돼 ‘핵 주권’ 수호라는 명분과 함께 제재 해제를 통한 경제적 실리를 확보할 수 있게 됐다. 명분과 실리의 적절한 조화다.

 이제 국제사회에 남은 핵 확산 문제는 북한 핵 문제뿐이다. 쿠바와의 관계 정상화와 이란 핵 협상 타결에 이어 북핵 문제까지 해결한다면 오바마는 외교적 ‘대업(大業)’을 이루게 된다. 하지만 여건은 그렇지 못하다. 이란 핵 문제의 완전한 해결까지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은 데다 공화당을 중심으로 한 미 의회의 반대도 큰 장애물이다. 최종안을 완성하고, 그걸 토대로 의회를 설득하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더구나 북한은 이란과 다르다.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에서 벗어나 세 차례의 핵실험을 실시한 사실상의 핵 보유국이다. 북한은 핵 보유를 헌법에 명기하고 핵 무력 증진과 경제 발전의 병진노선을 추구하고 있다. 2·29 합의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해 오바마 행정부의 체면을 짓밟은 전례도 있다. 북한을 믿고 협상을 재개하기에는 정치적 위험 부담이 너무 큰 게 사실이다.

 그러나 오바마가 ‘전략적 인내’ 뒤에 숨어 팔짱을 끼고 있는 동안에도 북한 핵무기에 들어갈 핵 물질은 계속 쌓여가고 있다. 언제부턴가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를 포기하고, 대중(對中) 견제를 위한 ‘아시아 회귀’의 명분으로 북핵을 활용하는 전략으로 바뀐 느낌이다. 이란 핵 협상이 타결됐다고 북한 핵 협상 동력이 저절로 살아날 상황이 아닌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우리마저 손을 놓고 있을 순 없다. 북핵 위협의 당사자인 한국이 나서야 한다. 미국·중국·러시아는 6자회담의 당사국이면서 이란 핵 협상 참가국이기도 하다. 이란 핵 협상 타결을 계기로 정부는 이들과 긴밀히 협의해 7년째 중단 상태에 있는 6자회담 재개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남북 접촉을 통해 북한을 회담 테이블로 끌어들이는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

 윤병세 외교장관은 한국은 종속변수가 아니라 독립변수라면서 한국의 처지를 강대국 사이에 낀 샌드위치 신세로 보는 패배주의적·자기 비하적 시각을 경계했다. 오바마에게 말해 본들 씨도 안 먹힐 것이라는 생각으로 북핵 협상 재개 노력조차 해보지 않는 것이야말로 패배주의적이고 자기 비하적인 태도 아닌가. 북한 핵을 바꿀 수 없는 상수(常數)로 인정하고 값비싼 무기를 들여와 막을 궁리나 한다면 그것은 외교력 부재를 스스로 드러내는 것이다. 이란 다음은 북한이란 각오로 한국이 외교력을 발휘할 타이밍이다.